이번년도 봄비가 올 적에 쓴 편지

공지사항 24.07.11



어제 비가 와서 오후가 쌀쌀했다.

우산을 쓰고 가방을 매자
내가 짊어지고 있는 것들과 함께 저 길 따라 걸어갈 걱정을 한 탓에, 너를 아주 잠시 잊어버리고 말았다.

넌 내가 널 잊을까봐 내 폰으로 마구 셀카를 찍고, 내 인생에 어떤 흔적을 남기려고 애썼지만
결국 너라는 존재만큼 큰 무언가를 남기진 못하고 떠났으며, 사소한 하나를 분석해야만 전체를 볼 수 있었던, 바보같은 난 사소한 창문 열고 닫는 소리 하나에도 널 떠올려버리는 그런 사연많은 어른이 되어버렸는데도.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그 탓에 난 너가 없어도 널 생각하는게 가능해졌다.

깨끗한 소아병동에서 간호사가 꽃아준 링거 줄이 너무 무겁고 쥐가 나 엉엉 우는 어린 나에게 우리가 언젠가 이 몸에 흉터가 살결따라 있는 작은 무늬처럼 옅어질 무렵에 그러니까 너와 내가 대학을 가고, 졸업을 하고 연애를 하고 서로의 결혼식에 가장 친한 친구로 나와 울면서 축하해주는 너무 멀지만 사랑스러울 어느 미래를 너가 말해줬더라. 난 그럴 일이 있겠냐며 비관적으로 말하면서도 너가 말하는 그 미래를 마음 속으로 동경하며 살아왔다.
난 이제 혼자 밖에 두발로 저벅저벅 걸어가 내 손으로 술을 사올 수 있을만큼 일어서있지만 여전히 어딘가 불안정하고 건강하지 못하며,

넌 담배는 폈지만 술은 마셔보지 못하고 죽었다는 것이
고주망태로 취한 네 모습을 보고 싶었는데 아쉽게 됐다는 것이

마음에 누군가 손으로 어설프지만 과하게 압력을 가해 빵꾸라도 만든 것처럼 아프고 아팠다. 그러게 내가 나쁜건 하지 말라고 말했는데 담배는 왜 폈는지.. 결국 고등학교도 제대로 못다니고 내가 대학가는 것도 못 보고 넌 죽었다. 내가 대학 가는 거 보면 배 아파서 또 죽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 나도 안다 넌 그럴 애가 아니라는 거. 담배도 너가 울면서 핀 거 알고 있었다. 너가 나한테 짜증내고 화풀이하고 내가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고 올 때마다 불안해했던 거. 곧 다가올 죽음 앞에서 초연하지 못했던 거. 너무 착해서 죽을 때까지 그런 일들로 나에게 미안해 하던거.
그럴 필요 없었는데... 난 너 없었으면 무언가를 상상하며 살아갈 인간이 못 되었을 것이며 한평생 인생을 텅빈 쿠팡 박스를 접는 선 따라 접어가듯이 희미하고 무용하게 살아갔을 테니까.

어제 봄비가 왔었다. 다들 쌀쌀해진 날씨에 외투를 입고 나간다. 좋아하는게 참 많았던 넌 꽃들이 비에 얼그러진다고 봄비가 싫다고 말했었다. 봄 벚꽃 가을향기 지하주차장 기름냄새 피곤해서 기절잠자는 거 정말 별거 아닌 것도 좋아한다고 말하는 너였는데.
그래서 난 너가 좋아하는 것보단 싫어하는 걸 더 오래 기억해버렸다. 봄비가 아직도 싫어? 나도 봄비가 싫어. 그치만 너가 싫어하는 봄비인데도 난 결국 이걸로 널 생각해버렸다. 그렇게 마냥 생각만 하면서 오늘도 살아간다.
문득 고개를 들어 하늘에 인사해보았다.
안녕안녕 난 오늘도 이렇게 살아간다. 살아있다면 숨도 못 쉴만큼 폭싹 안아줬다가 깔깔대며 함께 웃고 싶다.

그럴 수 있다면 우린 이 봄비조차 사랑하게 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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