醢는 육장.젓갈로 형벌해와 다름. 소금.양념넣고 육류로만든 醢는 한국의경우에도 제사....

공지사항 24.07.14
[1]. 필자는 성균관대 출신 윤 진한(1983학번)입니다. 수천년 세계종교들은, 자기만의 고유 특성이 있어서, 식민지로 만들지 않는 이상, 타 종교를 믿고 살기가 어렵습니다. 유교는 음식을 바치는 제사(설날.추석때의 차례는 조금 다름), 음식을 바치지 않는 기도가 있습니다. 수천년 인류전통에서, 인류가 죽고, 굶주리고, 병들고, 재난을 당할때, 하느님의 초월적 존재를 체감하여, 동아시아는 세계종교 유교, 서유럽은 세계종교 가톨릭을 형성하여 수천년 이어지고 있습니다. 유교의 경우, 일반인들도, 대보름, 칠월칠석, 추석때  달님과 별님에게 복이나 허락된 소원을 빌도록 하고 있습니다. 우주만물과 만물의 영장인 인간을 창조하신 최고신 하느님(天)에 대한 제사는 天子만이 할 수 있도록, 제도화되었으니까, 일반인들은, 해당 명절때, 유교의 다신교 전통에 따라, 최고 하느님(天) 다음의 하위신 月神.星神님께, 기도하는 특전을 생각없이 넘기면 않됩니다. 그리고, 달라고 소원만 빌것이 아니라, 자기가 잘못한 일이 있으면, 月神.星神, 조상신(고조부.증조부등은 조상신이 아님. 시조신 정도 되어야 조상신임)에 무릎꿇고 잘못했음을 뉘우치고 용서를 구하는 기도를 하는게 좋습니다. 다만, 유념할것은, 일반인들은 최고神 하느님(天)께, 직접 제사.기도하면 않됩니다. 유교는 음식을 바치는 제사의 경우, 주어진 제사장의 위치[天子, 諸侯, 大夫, 士, 庶人(평민층등)]가 정해졌으니까, 제사장의 지도에 따라야 합니다. 제사장의 권위를 무시하고, 함부로 제사하는것에 대해, 유교는 아주 엄격하게, 탄압수준의 제지를 해왔습니다. 그러므로, 주어진 제사신분의 예법에 따라, 환구대제(황사손 이원), 종묘대제, 사직대제에 참여할때, 또는 제도권의 산천제사때, 그리고 공자님제사때, 문중제사때, 가족제사때, 잘못한 일에 대해서 용서를 구하는 마음속의 기도를 곁들여 보는 방법이 있겠습니다. 유교는 자식에 패륜을 저지르면, 그 부모는 더 이상 부모가 아니고, 제사대상이 아니며, 죽어서는 허공을 떠도는 유령정도의 孤立魂이 되어 떠돌다가 소멸됩니다. 자식이 부모에 패륜을 저질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점이 삼강오륜을 생활화 해온 유교가 다른 종교들과 아주 크게 다른 점입니다. 유교는 조상제사가 있어서 그렇습니다. 他종교와 가장 크게 구별되는 특징이 유교의 조상제사입니다. 이런 역사때문에, 타 종교에서 유교의 조상제사를 인정치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찌되었든, 한국은 수천년 유교국가일뿐입니다. 문명형성 초창기의 카오스(혼돈)는 유교도 있고, 기독교도 있고, 브라만교(힌두교), 불교 다 있겠는데, 유교의 경우에는, 이런 원시문명의 카오스를 극복할때, 孝와 삼강오륜을 유독 강하게 중시해와서, 타 종교와 다릅니다. 한편, 가장 큰 죄는 하느님께 죄짓는 것이며, 하늘에 죄지으면, 빌곳이 없다고 공자님께서, 가르치셨습니다. 先史시대, 인류가, 정제되지 않은, 카오스(혼돈)상태일때, 유교도 헬레니즘과 같은(후세인들이 이에 대해 죄의식을 느끼게 됨), 후세의 윤리척도로 들이대면, 부끄러운 行態를 보이고 살았습니다. 유교는 이를 孝나 삼강오륜으로 승화시킨것이고, 로마제국의 국교가 된 헤브라이즘은, 가톨릭의 원죄의식.회개로 승화시켰습니다. 유교는 더 구체적으로, 맹자님의 수오지심(羞惡之心) 교육으로, 부끄러운 마음과 악을 미워하는 마음을 전승시켜, 유교의 원시 카오스(혼돈)상태를, 스스로 치유하는 방법을 채택해 왔습니다. 후세의 보잘것없는, 우리들이, 지워지지 않고 전승되는 先史시대의 인류의 삶의 방식과  답습.점진적개선 과정을 거친점을 무시하고, 현재의 윤리적 기준으로, 정제되지 않았던, 인류의 역사를 부정하는건, 베이징원인, 네안데르탈인.크로마뇽인과 같은, 인류의 선조들을 부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교나 가톨릭은 법전이나 윤리교과서를 넘어서는 초월적인 인류의 삶이고 하느님숭배 경전인것입니다.  남들의 사고방식에서, 배울점이 있으면, 상호 영향을 끼치면서, 점진적 개선을 해나가는 방법도 좋습니다. 공자님은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세 사람이 길을 같이 걸어가면 반드시 내 스승이 있다. 좋은 것은 본받고 나쁜 것은 살펴 스스로 고쳐야 한다[三人行必有我師焉 擇其善者而從之 其不善者而改之].@그런데, 일본은, 하느님을 부정하는 불교 Monkey에다가, 성인 대중문화로, 정신병 수준의 패륜이 너무 종교적 수준으로 횡행하는데, 자정방법이 없는지, 너무 심하다고 기독교가 지적하는 지경입니다.
@불교는 하느님.창조신을 인정않고 부처 Monkey가 더 높다고 하는 주장이고, 불교계열 일본 신도는, 성씨없는 賤民 점쇠 Monkey가 천황으로 옹립되어(하급무사들이 옹립), 하느님보다 높고, 유교가 종교아닌 사회규범이고, 신부를 억압하고 목사를 구타하던 후발신앙인데, 일본이 패전국이 되어 아주 다행입니다.

황하문명의 중국과, 에게문명의 그리스 문화를 이어받은 로마제국은, 주변의 비문명지역들을 정복해서, 개화시켰는데, 은.주.진.한의 중국과 로마제국은 문명이나 그 당시 선진문화를 모르던, 야만족들을 지배국가의 문물로 계도시킨것이라고 생각해왔을 것입니다. 한국과 일본관계는, 한국이 수천년 야만족 일본에 문물을 전해준 어버이나라라고, 일본도 그렇게 알고 살아온 역사가 있었습니다. 황하문명의 중국영향을 일찍 전수받은 한국은, 기자조선과 삼한, 낙랑.부여.고구려의 선진국상태였고, 일본은 그 당시, 아무것도 모르고 문자도 없고, 생각도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섬나라 미개인 상태였다고 봅니다. 한국 유교를 따라왔으면 문제없었는데, 막부시대에 불교국가가 된 일본. 사람옷을 입은 원숭이가 되어, 유교와 유교나라 한국을 어지럽혀온 일본 倭寇.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일본 원숭이가 기독교를 탄압하면서도, 서양문물을 일찍 받아들여, 원숭이들이 강력한 무기도 만들고 위세를 떨치다가 결국 패전국이 되었습니다.

나중에 부처 Monkey따라 창조신 부정하고, 성씨없는 賤民 점쇠 Monkey(일본에서는 천황으로 옹립)가, 유교를 종교아닌 사회규범으로 격하시키고, 점쇠 Monkey가 하느님보다 높고 예수님보다 높다고 하며, 신부 억압하고 목사 구타한걸로 보아서는 일본인은 원숭이로 태어나, 나중에 중세시대에 서유럽문물을 일찍 운좋게 받아들여, 전쟁무기도 잘 만들고, 서유럽 인간들의 과학으로, 강력해진 원숭이종족 같기도 함. 한국이 문물을 전해주면서, 의복도 입고, 집도 짓고, 요리기법도 배우고, 살게된 원숭이 종족.



@무명의 중국 張守節이 후세에 지은 사기정의란 이상한 책. 이를 주요 교재로 삼아, 무명의 한국 불교학교 출신들과, 사적 모임들이 저술활동에 참여한 것을 기회로 삼아, 유행시키려 하는 주장들. 성씨없는 불교 원숭이 일본 賤民 점쇠(하급군인들이 천황으로 옹립)와 주권.학벌없는 패전국 노예 왜구 서울대 불교 Monkey 하수인들이, 유교도 모르면서, 시중의 통속적인 책으로, 오도하는것에 불과함. 위키백과라고 누구든지 편집에 참여하는 공간이 있는데, 한국인들이 2천년동안 몰라왔고, 중국.한국정부도 인정치 않던  개인저작물 사기정의(史記正義)는 사기의 주석서로 당나라의 장수철(張守節)이 저술하였다. 사기집해, 사기색은과 함께 사기3가주(史記三家注)라 불리며 30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서문에 의하면 당나라(唐) 개원(開元) 24년(736년)에 저작되었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은나라 폭군으로 회자되는 주왕에 의해, 주나라 문왕의 인육삶은 국 섭취가 나온다고 합니다. 야사나 루머가 인용하는 당나라 시절 야사인 사기정의를 인용한 내용입니다. 
 《사기정의》 은본기에서는 백읍고의 죽음에 대한 끔찍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음. 당시 상나라의 군주는 제신(=은 주왕)이었는데, 그는 주지육림과 포락지형 등으로 악명높은 폭군의 대명사와 같은 인물이었음. 하루는 제신의 폭정을 전해들은 서백 창이 한숨을 푹 쉬었는데, 숭후호라는 자가 이를 밀고하면서 서백 창이 선과 덕울 베풀어 제후들에게 인망이 있으므로 언젠가 후환이 될 것이라 주장했음. 결국 제신은 서백 창을 체포해서 유리라는 곳에 감금했음.


당시 서백 창의 장남인 백읍고가 제신에게 인질로 가있었는데, 제신은 백읍고를 죽여서 그 살로 국을 끓이곤 "서백 창이 정말 성인이라면 자기 아들로 끓인 국을 먹지 않을 것이다."라 말했음. 이는 서백 창의 사람됨을 시험해보려는 수작이었으니, 결국 그는 살기 위해서 아들의 고기로 끓인 국을 먹을 수 밖에 없었음. 이 모습을 보고 제신은 "누가 서백 창을 성인이라 했단 말인가? 자기 아들로 끓인 국을 먹고도 도리어 알지 못하는구나."라 비웃었음. 


아들의 고기를 먹고 목숨을 건지는 수모를 당한 서백 창은 보물과 미녀를 제신에게 뇌물로 바친 덕분에 석방될 수 있었고, 이후 강 태공과 같은 인재를 기용하며 복수의 칼날을 갈았음. 그러나 그는 결국 생전에 상나라에게 복수하지 못한 채 죽었고 그의 뒤를 이어 즉위한 주 무왕이 아버지가 다져 놓은 기틀을 물려받아 제신을 제거하고 상나라를 무너뜨린 후 주나라의 시대를 열었음. 
주나라 문왕 희창(姬昌)의 장남. 성은 희(姬), 이름은 고(考). '백(伯)'은 아버지 희창의 작위 서백(西伯), '읍(邑)'은 장자, 후계자임을 나타낸다. 즉 '백읍고'란 '서백후 희창(姬昌)의 장자 고(考)'라는 뜻.[1]
희창의 후계자였고 상나라의 폭군 주왕의 마차를 몰았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상나라에서도 인정을 받았지만, 희창이 감금당했을때 구출하기 위해 동생 희발. 희단과 함께 상나라로 갔다가 주왕에게 살해되었다. 주왕은 주문왕을 모욕하기 위해 백읍고의 고기로 만든 죽을 문왕에게 먹도록 했고, 문왕은 슬퍼하면서도 왕명을 거역할 수 없어서 이를 먹었다. 주왕은 이를 보며 "성인은 인육을 먹지 않는다던데, 니가 그러고도 성인이냐" 하고 놀렸다고 한다.

@그래서 2천년동안 인정받아온 正史.正論을 바탕으로, 세계사와 한국사를 대조해 보아야 하며, 유교경전, 가톨릭경전, 동양사, 서양사, 교황청의 공식 견해등을 위주로 하여야 할것입니다. 한국영토에 주권.자격.학벌없는 倭寇 서울대와, 일본이 뿌려두고 간 추종세력 및 불교 Monkey추종세력들이, 유교도 믿지 않으면서, 그리고 유교도 모르면서 단편적인 野史나 루머.僞書의 글을 중심으로,  새로운 도발과 주장을 하는것은 아주 조심하고, 인정하지 말아야 합니다. @요즘, 이런 사이비들이, 일본 영향을 받아, 유교도 모르면서, 논어를 해석하고, 주역도 해석하면서, 이상한 주장을 하며 살고 있습니다. 체계적으로 배우려면, 한.당 훈고학을 거쳐, 중국 송나라시대 황제가 인정하고 후원해온 주자의 주자학(성리학)과, 조선시대 성균관의 오경사서, 성리대전 및 조선.대한제국의 군주들이 공부해온 주자학(성리학)과, 성균관 출신 유학자들의 오경 사서 해설, 대과에 급제한 유학자들의 오경사서, 현대의 성균관대, 성균관, 향교.서원 및 국가 연구기관과 관계된 전통 성리학자들의 오경.사서 譯解書 외에는 인정하기 힘듭니다.


[2]. 醢는 육장.젓갈로 형벌해와 다름. 소금.양념넣고 육류로만든 醢는 한국의경우에도 제사.결혼예물.김치에도 들어가는 문명의 산물.중국문물 수입,한국도 신라때부터 醢등장.삼국사기,고려사,세종실록지리지에도 나옴.황하문명,유교,하느님,조상신,공자나라 중국과 양념도 잘몰랐고 지금도 맛없는 간장에 회가 주식인 일본.가끔 회를 먹는 한국처럼 초장양념이 나음. 2차대전중 미군.중국인 인육먹어 재판받은 현대식인종 일본.하느님.창조신 이기려던 일본 불교Monkey. 고대의 인류역사 관련, 문자를 가졌던 중국같은 문명국은 여러가지 사실대로 기록하고,문자없던 나라들은 기록할 내용이 없었던 역사. 문자를 일찍 가진 고대중국역사나 성경에는 인육먹은 역사가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1]. 중국의 한자를 수입해 문자로 기록하게 된 이후 한국도 역사를 사실 그대로 기록하는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삼국사기에 의하면 고구려 소수림왕때, 백성들이 굶주려 서로 잡아먹을 지경에 이르렀다고 서술되어 있습니다.
 
1. 삼국사기에 나오는 한국의 식인 역사.
 
8년(서기 378), 가뭄이 들고 백성들이 굶주려 서로 잡아먹을 지경에 이르렀다.가을 9월, 거란이 북쪽 변경을 침범하여 8개 부락을 함락시켰다.
. 출처: 소수림왕 [小獸林王] (원문과 함께 읽는 삼국사기, 2012. 8. 20., 김부식, 박장렬, 김태주, 박진형, 정영호, 조규남, 김현)
 
2. 세계의 식인풍습. 선사시대 유적에 따르면 식인풍습은 남동유럽과 서남아시아에서 주로 있었다. 역사시대에도 여전히 존재.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 뉴기니, 멜라네시아, 폴리네시아, 중국과 인도의 일부 지역, 중앙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의 대다수 지역, 북아메리카의 동부와 중부, 중앙아프리카와 서부아프리카 등.
 
식인풍습많은 사람들이 어릴 적 식인종이 정말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진 때가 있을 것이다. 아프리카나 브라질의 한 흉포한 원주민이 전쟁에서 잡은 포로를 잔인한 방법으로 죽이고서 먹는 장면이나 자신이 나무에 묶인 채 광란의 춤을 밤새도록 추는 원주민에 둘러싸여 있는 장면을 떠올리며 몸서리친 적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식인은 인간이 가장 금기시하는 행위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식인풍습은 윤리와 규범이 존재하지 않는 야만인에게나 존재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어쨌든 식인풍습은 선사시대에서부터 있었다. 선사시대 유적에 따르면 식인풍습은 남동유럽과 서남아시아에서 주로 있었다. 역사시대에도 여전히 존재했다.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 뉴기니, 멜라네시아, 폴리네시아, 중국과 인도의 일부 지역, 중앙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의 대다수 지역, 북아메리카의 동부와 중부, 중앙아프리카와 서부아프리카 등에서 나타났다.
. 출처: 식인풍습 (왜 그 음식은 먹지 않을까-세계의 금기음식 이야기, 2008. 12. 25., 정한진)
 
3. 종교학 대사전에 나오는 식인.
카니발리즘기근 등의 극한 상태에서, 또는 특수한 반사회적, 병적인 행위로서, 또는 사랑의 극한에서 인간이 인간을 먹는 일이 있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좁은 의미로 카니발리즘(인육학식, 식인습속)이라는 말은 식인(食人)이 정상적이며 합법적인 행위로서 사회적으로 인정되거나, 일정한 상황 또는 조건하에서 식인이 의무나 권리로서 규정되어 있는 경우, 즉 사회적으로 용인된 습관으로서의 식인을 가리키는데 이용된다. 이런 의미에서의 카니발리즘은 인류사회에 매우 널리 보이는 습관이라고 일반적으로 믿어졌으며 카니발리즘을 보고하는 자료도 무수하다. 카니발(식인자(食人者))이라는 말은 콜럼버스의 보고에 의해서 식인자라고 간주된 카리브족(Caribs)에 유래한다. 스페인인의 발음의 잘못에서 카리브가 카니브가 되며, 거기에서 카니발이라는 말이 발생한 것이다.
이민족 중에서 식인자의 오명을 쓰지 않은 민족이 없을 정도로 식인자에 관한 소문이나 보고는 세계에서 나타난다. 유럽에서 이 주제에 대한 연구사상 유명한 자료로서는 서인도제도나 신대륙에 관한 콜럼버스의 보고, 브라질의 투피난바족에 관한 보고, 코르테스에 의한 정복 전후의 아스테카족에 관한 기록, 뉴질랜드나 타히티에 관한 캡텐 쿠쿠의 보고 등이 있는데 무수히 있는 자료에 의거해서 식인을 몇 가지 타입으로 분류하는 것도 시도되었다.
먹히는 자의 종류에 의한 분류의 일례로서는 ①족내식인(族內食人, 자기 집단안의 성원만을 먹는 것), ②족외식인(族外食人, 자기 집단 밖의 자만을 먹는 것), ③자식인(自食人, 자기 자신의 신체의 일부를 먹는 것)이있다.
행위의 동기를 기준으로 분류하면 ①식통적(食通的) 식인(인육이 맛있기 때문에 먹는 것), ②의례적이나 주술적 식인(사자의 영력이나 성격 등을 흡수하거나, 사자와 동일화되기 위해서 죽은 근친이나 적 등을 먹는 경우), ③살아남기 위한 식인(음식 부족 등의 위기적 상황하에서 통상적으로는 금지되어 있는 인육을 먹는 것)등이 있다. 식인의 이유로서 단백질을 보급하기 위한 관습이라고 주장하는 연구자도 있다. 그런데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식인 습속에 관한 보고의 대부분은 자료가치가 매우 낮아서 신빙성이 부족하다는 것이 밝혀졌다. 습관 또는 문화적 제도로서의 식인의 존재를 주장하는 보고로 자료가 충분한 것은 전무하다는 연구자도 있지만, 신뢰할 수 있는 자료가 극히 소수이기는 하지만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연구자도 있다. 결국 현재 식인 습속의 존재를 부정할 수는 없지만 과거에 믿어진 만큼 널리 분포되지는 않았다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이런 연구 과정에서 주목되기 시작한 것은 거의 모든 민족이 식인자의 존재에 관한 전승이나 신념을 가진다는 점이다. 이는 직접 관찰에 의한 신뢰할 만한 보고의 희소함과 흥미로운 대조를 이루고 있으며 그런 전승이나 신념은 대개 다음과 같은 형태를 취한다. <우리들은 먹지 않지만 이웃 부족은 먹는다>·<우리들은 먹지 않지만 요술자는 먹는다>·<우리들은 먹지 않지만 옛 선조들은 먹었다> 등, 즉 자신들은 먹지 않지만 그들은 먹는다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도대체 어떤 자일까. 사회 내부의 〈그들〉로서 가장 널리 나타난 것은 요술자이다. 요술자는 존재 자체가 악을 방사해서 타인에게 재앙을 가져온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인데, 요술자의 이미지에서 가장 일반적인 것은 그들이 근친상간을 범하고, 또한 인육을 먹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식인이 반사회적·반문화적·반인간적인 행위의 극치를 상징히는 것으로 인식된 것은 거의 보편적이다. 요술자의 이미지가 사회 외부에 투영되자 〈사악해서 야만스러운 그들 = 이민족〉이 된다. 식인은 야만적 이미지의 중핵적인 구성요소이기도 하였다.
예를 들면 근·현대의 유럽인에게 나체, 난혼, 식인은 언제나 야만인의 상징이었다. 인간이 인육을 먹는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가 이야기되지만, 식인이 단순한 살인과 전혀 다른 감정적 반응을 불러일으키며, 특수한 상징적 의의를 띠는 점, 또한 주술사나 야만인이 단순한 살인자가 아니라 특별히 식인자가 되는 점 등, 해명되어야 할 점은 많이 남아 있다.
. 출처: 카니발리즘 [cannibalism] (종교학대사전, 1998. 8. 20.)
 
2]. 패전국 왜구잔재불교Monkey들(경성제대후신 서울대등).강점기 하느님에 덤비며 유교 부정.
 
1. 자기들이 한국에 강제로 포교한 하느님.예수보다 높은게 성씨없는 일본마당쇠 賤民천황이라 강요하며 신부 겁주고 목사를 고문.구타하던 불교 Monkey 일본. 부처 Monkey가 인도의 창조신 브라만에 대항하여 브라만보다 높다고 창조신을 내리깔며 불교는 발전해서, 일본도 이를 본받아서, 일본내에서 그치지 않고 일제 강점기에 한국 유교를 왜곡해버린 불교 Monkey 일본. 한국은 공자님 이전, 기자조선때 始原유교인 하느님 숭배와 한문성씨가 유입되었습니다. 한나라 때 공자님의 유교는 동아시아에서 세계종교 유교(중국,한국,베트남,몽고)로 성립되었습니다. 이후 동아시아인들은 수천년동안 하느님,산천신,조상신을 제사하고 공자님도 숭배하면서, 유교는 동아시아인의 생활에 구심적 역할을 해오고 있습니다. 중국은 황하문명을 태동시키고 하느님(天), 천자(天子).한자(漢字).유교 및 세계 4대 발명품(종이, 화약, 나침판, 인쇄술)을 만든, 수천년 문명국입니다.
황하문명 중국이 발달되어 醢(육장,젓갈) 먹은것. 인육 아님. 한국에서 문물을 수입해가던 야만족 출신 일본. 지금도 초장등이 없이 회를 주식으로 먹는 일본(물론 한국인도 가끔 먹음). 중국은 음식을 끓여먹지만 고대에는 회도 먹음. 2차 대전중 미군.중국인 인육먹어 재판받은 일본. 하느님.창조주 이기려던 일본 불교Monkey. 현대의 태반주사나 태반 의약품은 합법적으로 승인받으면 누가 어떻게 못 하지만, 암거래시장에서 돈을 벌려고 하면, 분명히 법에 걸립니다. 이런것은 엄격히 제지해야 합니다. 세계 여러나라에서 일어난 과거의 일이야 지금와서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세계의 간격이 좁아진 요즘같은 시대는 다른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신속하게 보도되기 때문에, 정말 실정법에 의거, 엄격하게 법을 집행해야 합니다.
 
 
2. 먼저 요즘 유언비어팀이 퍼뜨리는 醢는 한자사전에서 육장해로 나옵니다. 고기 장조림 종류입니다. 또는 젓갈해라고도 합니다. 그리고 형벌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고기류의 육장.젓갈醢는 음식종류이고, 사람이 형벌에 처해지는 醢와는 다릅니다. 중국이 황하문명이 발생하여 다른 종족들은 날것먹고 수렵생활 할때, 불도 사용하고 음식을 발효시키고 소금.양념도 사용하여 문명화 단계로, 날것 먹는것에서 벗어나 육장이나 젓갈을 먹을 정도로 문명이 발달한 것입니다. 생선회를 주식으로 하는 불교 Monkey일본을 보면 수천년전 문명발전 이전의 식습관을 아직도 그대로 즐겨하는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음식조리법을 잘 몰라, 맛없는 단순 간장에 회를 지금도 주식으로 먹고, 양념도 별로 없어온 야만족 일본과는 다른게 세계사의 황하문명이고 중국문화고 한국은 오랫동안 중국문물을 수입해왔습니다. 중국이나 한국은 전통적으로 다양한 음식에, 양념이나 조리법이 일본에 비해 엄청 발달했던 나라입니다. 

3. 한자사전에 나오는 醢에 대한 설명들입니다.
 
1. 육장(肉漿: 포(脯)를 썰어 누룩 및 소금을 섞어서 술에 담근 음식) 2. 젓갈(젓으로 담근 음식) 3. 형벌(刑罰)의 이름 4. 절이다 5. 삶다
 
2. 공자님의 제자 자로의 해형(醢刑)과 관련된 두산백과의 서술입니다.
 
...《사기》에는 공자는 위나라에 변란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는 자로가 뜻을 굽히지 않고 목숨을 잃을 것을 예견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자로는 죽은 뒤에 시신이 소금에 절여지는 해형(醢刑)을 당했다고도 전해진다.
당나라 현종 때에 '위후(衛侯)'로 추봉되었으며, 송나라 진종 때에는 '하내공(河内公)'으로 봉해졌다. 아울러 송나라 도종 때에는 '위공(衛公)'으로 봉해졌다.
. 출처: 자로 [子路] (두산백과)
 
3. 한편, 대중언론에 보도된 해와 관련된 기사들입니다. 음식 醢를, 해형(醢刑)과 구별하지 못해, 공자님과 그 제자 자로에 대한 일화를 잘못 받아들여 요즘 왜곡하는 내용들에 대한 사실규명 보도입니다.
 
가. 세계일보 기사. 2012, 07, 03, 세계일보 뉴스팀 보도.
 
공자 인육설은 ‘해(醢)’를 잘못 해석한 치명적 오해명사 ‘젓갈’과 동사 ‘형벌’을 구분하지 못한 데서 온 ‘공자 죽이기’성균관 유림, “인본주의 기초한 ‘공자 바로보기’에 집중했으면” 바람
 
학계에서는 "형벌 '해'와 고기젓갈 '해'를 동일시하여 공자를 깎아 내리려는 움직임들이 결국 ‘공자=인육’이라는 근거 없는 소문을 만들어냈다"고 강조한다.
https://www.segye.com/newsView/20120703021688
 
 
나. 인사이트 기사. 2018, 01, 07, 심 연주 기자 보도.
 
...당시 공자에게는 자로라는 제자가 있었는데 그를 무척이나 아꼈다. 그런데 자로가 섬기던 왕자가 왕위 다툼에 시달리게 됐고, 이 과정에서 그가 살해당하는 일이 발생했다. 자로의 시신은 염장(鹽藏)돼 공자에게 보내졌다. 이를 본 공자는
그 뒤로 소금에 절인 음식인 젓갈조차 먹지 못했다고 기록돼 있다. 해당 기록에는 해(醢)라는 글자가 들어가는데, 여기에는 사람을 젓갈로 담근다는 뜻도 포함돼 있다. 사람들은 이를 잘못 해석해 공자가 인육을 즐겨먹었다고 오해하게 된 것이다. 
 
. 필자 주). 세계일보 보도대로 공자를 깎아 내리려는 움직임들이, 최근 정체불명의 세력들에 의해 근거없는 유언비어 형식으로 널리 퍼뜨려지고 있는것을 확인했습니다. 
 
위대한 성인 ‘공자’가 인육 젓갈을 즐겨 먹었다는 괴담의 진실 - 인사이트 (insight.co.kr)
 
이 醢를 잘못 해석한 무식팀이 요즘 수천년전 중국이 인육을 즐겨먹었다고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중입니다. 임진왜란중에 한국사람이 생선회 같은것을 먹으면 중국인은 이를 빼앗아 던져버릴 정도로(중국에 역병이 돌아 위기의식을 가져, 그랬다고 함) 중국은 음식을 끓여먹기를 관습으로 하고 있습니다. 요즘도 생선회를 단순 간장에 주식으로 하는 불교 Monkey일본을 보면 수천년전부터 양념이 발달하지 못했던 관습을 아직도 그대로 즐겨하는것을 알 수 있습니다. 수천년전에는 기독교도 인육을 먹기는 먹었습니다. 
일본은 날것회가 주식. 중국식당은 음식 끓임. 다른 나라는 불이나 양념도 제대로 없던 시대 황하문명을 이룬 중국. 회는 그 당시 기준 가늘게 썬것이 가장 문명화된 모습이라 보여집니다. 물론 한국사람은 현재 어느정도 회를 가끔 먹는 분들이 있는데, 초장을 찍어서 별미로 먹지요. 이런건 무방합니다. 가끔 드시면. 음식점에서 조리한 최근 방식대로 가늘게 썰어서 초장에 찍어먹으면 무난합니다. 
수천년전 기독교도 인육먹었다고 하지만, 시대변천,인간도 변천.
 
유교는 인간이 만물의 영장. 하늘의 기품과 땅의 형상 가장 고귀하게 부여받은 중간적 존재. 하느님이 인간창조(天生蒸民). 상고시대 숭배 五帝(하늘로승천,계절주관) 모시며,오제이전 초월적 자연天(태극과연계)이 함께 어우러져 형이상학적 天을 숭배하던 공자이전의 始原유교. 요,순등 성인임금도 숭배. 세계종교 유교는 하느님,산천신,조상신,공자 숭배. 창조신 내리까는 부처Monkey.
 
제왕의 스승 공자! 성인임금. 공식칭호는 大成至聖文宣王.至聖先師. 공자님의 아버지가 그 당시 너무 나이가 많아 음양오행론에 비추어 볼때, 아이를 낳을수 있는 나이가 지난것으로도 생각되어 생물학적인 야합으로도 서술된 기록도 있으나 성인임금이시자 위대한 스승이라는 존경을 더 중요시하며 객관적으로 기록한 것으로 이해하면 됩니다. 요즘 외국 재벌들의 경우나, 다른 나라의 특이한 경우에, 남자가 나이가 아주 많아서 후손을 남기기 어렵다고 판단되는데, 어린 여자를 얻어서 결혼하는 경우도 보여집니다. 인류는 남자가 경제력이나 능력이 있으면, 어린여자를 얻어 종족을 보존하려는 하느님이 부여하신 신성한 마음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에, 문제될게 전혀 없습니다. 은나라왕족의 후손이시며 주나라 대부신분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가난하여, 士계급에서 시작하여, 만인의 스승이 되는 과정을 겪으신 위대한 성인이시자 스승 공자님. 공자님이 태어나실 때, 공자님의 집안은 불우하였고 세살 때에 아버지를 여의었기 때문에 매우 가난하고 외롭게 자라셨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가난을 딛으시고, 大成至聖文宣王.至聖先師의 지위로 추증되신 공자님은 하느님과 이전 성인임금이신 오제나 요,순같은 분들을 계승시키시고 인의예지신을 남기시고 삼강오륜을 낳게하시어, 민중들을 계몽하신 위대한 성인이십니다. 공자님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영원히 위대한 하느님.성인임금의 계승자이심도 변치 않습니다. 인간을 선하고 교양있도록 계몽하신 인류의 위대한 스승.
 
3]. 젓갈관련, 소금.양념류 넣고 육류로 만든 醢는 한국의 경우에도 제사나 결혼예물로도 쓰이고 김치에도 들어가는 문명의 산물임. 중국문물을 수입하여 한국도 신라때부터 醢가 등장하고, 삼국사기, 고려사, 세종실록지리지에도 나옴.
 
1. 해(醢)나 식해(食醢)관련, 한국 표준 국어대사전과 한국 민족문화대백과에 나오는 서술.
 
1). 표준 국어대사전에 나오는 해(醢).
 
가. 해즙(醢汁): 새나 짐승의 고기를 끓인 국물.
나. 수합해(水蛤醢): 이미 만든 조개젓에 뜨물을 치고 며칠을 두어 묽고 삼삼하게 다시 익힌 젓. 음력 정이월에 담근다.
 
그리고 해의 육장관련 표준 국어대사전은 육장을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습니다.
 
- 다 음 -
肉醬 [육짱]
. 명사 쇠고기를 잘게 썰어서 간장에 넣고 조린 반찬.
 
2). 한국 민족문화대백과에 나오는 식해(食醢).
 
토막친 생선에 소금과 밥을 섞어 발효시킨 음식.
. 출처: 식해 [食醢]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 두산백과에 나오는 젓갈의 역사.
 
젓갈의 역사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한류와 난류가 교차하여 어패류의 종류가 다양하고 풍부하여, 농사를 짓기 전부터 어패류를 먹어왔다. 그러나 어패류가 많이 잡히면 한꺼번에 다 먹기 어려워 소금에 절여 먹었는데 이것이 점차 젓갈로 발전하게 되었다. 특히 신석기 시대 유물 중에 강가나 바닷가에서 볼 수 있는 거대한 조개무지들이 발굴되는 것으로 보아 이 근처에 살면서 어패류를 주된 식량으로 하여 바닷물이나 소금으로 염장하여 젓갈로 만들어 먹었음을 추정해 볼 수 있다.
젓갈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기원전 3~5세기경의 중국의 고사전인 《이아(爾雅)》로, 생선으로 만든 젓갈인 ‘지(鮨)’와 육류로 만든 젓갈인 ‘해(醢)’ 가 나와 있다. 또한 기원전 3세기경에 나온 《주례(周禮)》에 해(醢), 자(鮓), 지(鮨)와 같은 문자가 발견되는데, 여기서 ‘해(醢)’는 육류나 어류에 술·누룩·메주·소금 등을 넣고 염장시킨 것으로 장(醬)과 해(醢)는 서로 만드는 방법이 같으나 사용되는 재료가 다르며, ‘자(鮓)’는 어류에 삶은 쌀과 채소를 섞어 염장 발효한 것으로 오늘날의 식해와 같은 것이고, ‘지(鰭)’는 어육장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醢)와 비슷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삼국사기》 신라본기(新羅本紀)에 젓갈에 대한 최초의 기록이 전해진다. 신문왕 3년(683년)에 일길찬(一吉飡) 김흠운(金歆運)의 딸을 왕비로 맞이할 때, 납폐 품목으로 쌀·술·장·육포 등과 함께 젓갈을 가리키는 '해(醢)'가 수록되었는데, 이것으로 보아 당시에 젓갈은 왕이 왕비를 맞이할 때에 보내는 결혼 예물의 하나로서 귀한 음식이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중국의 《삼국지(三國志)》 위지동이전(魏志東夷傳) 고구려조(高句麗條)에 보면 '고구려인은 채소를 먹고, 소금을 멀리서 날라다 이용하였으며, 초목이 중국과 비슷하여 장양(藏釀)에 능하다'고 하였다. 여기서 ‘장양(藏釀)’은 발효음식을 총칭하는 것으로 이 시기에 이미 장이나 젓갈 등의 발효음식을 만들어 먹는 것이 일반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송나라 서긍(徐兢)의 여행서 《고려도경(高麗圖經), 1123년》에 ‘신분의 귀천을 가리지 않고 상용하던 음식이 젓갈이다.’ 라고 기록된 것으로 보아, 고려시대에는 젓갈을 먹는 것이 보편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시기의 젓갈은 크게 어패류에 소금을 넣어 만드는 ‘젓갈류’와 곡류를 섞어 만드는 ‘식해류’로 분류할 수 있고, 젓갈류는 다시 소금에만 절이는 지염해(漬鹽醢)와 소금·누룩·술 등을 섞어서 만드는 어육장해(魚肉醬醢)로 구분할 수 있다. 또한 《고려사(高麗史)》와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등에 생선해(魚醢), 토끼해(兎醢), 사슴해(鹿醢), 기러기해(雁醢) 등이 기록된 것으로 보아 당시에는 어패류 외에 수조육류(獸鳥肉類)로도 젓갈을 담가 먹은 것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는 젓갈이 가장 발달한 시기로, 16세기의 《미암일기(眉巖日記)》에는 젓갈과 식해가 24종이나 기록되어 있다. 같은 시기에 나온 《고사촬요(攷事撮要)》와 《쇄미록(瑣尾録)》, 17~19세기에 편찬된 《음식디미방(飮食知味方)》, 《산림경제(山林經濟)》,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 등의 문헌에 소개된 젓갈이 180여 종 이상으로, 이 시기에는 매우 다양한 종류의 젓갈을 먹었던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조선 중기부터 많이 잡히기 시작한 명태, 조기, 청어, 멸치, 새우를 말리거나 젓갈로 만들어 전국에 널리 유통하였다.
조선시대의 농서와 조리서에 젓갈을 담그는 방법으로 염해법(鹽蟹法), 주국어법(酒麴魚法), 어육장법(魚肉醬法), 식해법(食醢法)의 4가지가 기록되어 있으나 이중 어패류를 소금에 절이는 염해법과 내장을 제거한 생선에 밥과 소금, 고춧가루, 엿기름 또는 누룩을 넣고 버무려 담근 식해법이 우리나라의 젓갈 제조법이고 나머지는 중국의 제조법이 우리나라에 소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어육장해와 주국어법은 고려시대 이후 조선시대에 들어서면서 점차 사라지고 지염해(漬鹽醢)와 식해가 오늘날까지 전승되어 내려오고 있다.
조선시대 전기까지 젓갈은 주로 밥 반찬으로 먹었고, 김치에는 젓갈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임진왜란을 전후하여 고추가 전래되면서 젓갈도 다양한 용도로 쓰이게 되어 양념용 젓갈과 반찬용 젓갈로 분류되었다. 특히 김치를 담글 때 고추와 함께 젓갈을 사용하게 되면서, 고추가 젓갈의 비린내를 감소시키고, 젓갈이 김치의 감칠맛과 저장성을 더욱 향상시켜 소금 대신 젓갈의 사용이 늘어나게 되었다.
. 출처: 젓갈의 역사 (두산백과)
 
4]. 공자님의 제자, 자로의 죽음과 관련하여 유교 경전 예기에 나오는 문장 분석.
 
1. 예기(禮記) 제(第) 3 단궁(檀弓) 상(上)
 
孔子哭子路於中庭 有人弔者而夫子拜之 旣哭進使者而問故 使者曰 醢之矣 遂命覆醢.
 
孔子가 자로의 죽음을 슬퍼하여 중정에서 哭하는데 어떤 사람이 와서 弔問하는 이가 있었다. 孔子는 그에게 절하였다. 哭을 끝내고 使者에게 나아가 子路가 어떻게 죽었느지를 물으니 使者가 말하기를 醢刑에 처해졌습니다(젓 담가지는 刑에 처해졌습니다) 라고 하였다. 공자는 드디어 醢(음식으로 먹는 육장.젓갈)를 엎어 버리게 하였다.
 
2. 유교경전인 오경 사서에서 공자님이 인육을 드시고 즐겨하셨다는 내용은 나오지 않습니다. 儒者들은 유교 경전인 오경과 사서를 중심으로 하느님.오제(五帝).산천신의 섭리를 느끼고, 조상신을 제사하며, 공자님.맹자님.성인임금들의 말씀과 행동을 배우며, 하느님.산천신.훌륭하신 조상신.공자님을 숭배하며 제사합니다. 그런데  최근 유교경전, 교과서, 참고서, 백과사전등에는 나오지 않는 괴담수준의 루머로 聖人이시자, 성인임금(文宣王)이신 공자님을 오도하는 글들이 인터넷상의 정체불명의 괴담수준 코너에 나오고 어지럽게 하고 있습니다. 심히 우려됩니다.
 
3. 해석을 둘러싸고 논란이 되는 부분.
使者曰 醢之矣 遂命覆醢. 使者가 말하기를 젓 담가졌습니다(필자 주: 醢刑에 처해졌습니다) 라고 하였다. 직역하여, 遂命覆醢에 대해 드디어 醢를 엎어버리게 하였다로 단순하게 해석하는 서적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무난합니다. 공자는 드디어 집의 젓갈(필자 주: 醢.육장.젓갈)을 엎어 버리게 하였다. 이렇게 하여도 무방합니다.하지만, 동사와 명사를 구별하여 독자들이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게 해석하는게 바람직하고, 경전의 자구에 충실하게 따른다면 문제될 게 없습니다. 그 당시의 전후사정을 정론서에 입각하여 풍부한 사례를 들며 부연설명을 해도 무방합니다. 
 
중국과 한국은 문화차이가 다르므로 잘 모르겠으면 직역하는것이 좋은 방법입니다. 使者曰 醢형에 처해졌습니다(醢형에 처해진 젓갈을 가져왔다는 말은 보이지 않음). 그러자 드디어 醢(음식으로 먹는 육장.젓갈)를 엎어버리게 하였다(遂命覆醢)! 사족을 달때는 중국 전후사정을 잘 알고, 상궤를 벗어나지 않는 正論書를 바탕으로 그 당시의 상황을 설명해 주는게 일반적입니다.
그런데 遂命覆醢에 대해,어떤 사람은 경전에 나오지 않는 사족을 달기도 하는 분도 있습니다. 使者가 가져온 그 젓갈을 드디어 엎어버리게 하였다라고 불충분한 근거로 간단하게 넘어가 버리는 경우입니다. 잘 모르는 사람들이 醢를 둘러싸고, 이상한 자료들을 끌어모아, 혼선을 불러 일으키게 하는 빌미를 제공하는 해석에 해당됩니다. 그저 예기 단궁에 나온대로 使者曰 醢之矣를 충실하게 따라 醢刑당했습니다(젓담가지는 刑을 당했습니다), 이렇게 해석하면 정확한데, 원전에 없는 내용을 확대해, 자로의 醢를 가져왔다고 제대로 설명도 하지 않고, 자의적으로 해석해 놓으면, 오해를 불러 일으키고, 중국.유교경전을 잘 모르는 이교도나 외국인들에게 꼬투리를 잡혀 시중의 루머에 악의적으로 이용당하게 됩니다.
 
여기서부터 상상이 가미되고 오해를 불러 일으키는 단서를 제공하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무서운 제후가 겁주려고 해도, 공자님은 이를 엎어버렸다라고 목숨까지 내놓으며 항거하는 상황을 만들어내는 뉘앙스를 풍기는건 좋지만, 정확한 해석과는 동떨어진 방법입니다. 
 
막강한 권한을 가진 제후가, 자로를 죽이고, 그 당시 제후들의 정신적 구심점 역할을 하시던 공자님께 使者를 보내 그 使者가 弔問하는 예우를 받으신 공자님으로 보여집니다. 음식으로 드시던 집의 醢(고기류의 육장,젓갈)를 엎는거야 문제될 게 없지만, 제후가 보낸 醢(형벌에 처해진 자로의 시체)를 그 자리에서 엎어버리면, 당시 상황으로, 황제들이 제사하기전의 공자님 위치로는 뒷감당이 어렵습니다. 설령, 자로의 醢(형벌에 처해진 자로의 시체)를 본보기로 가져와 공자님을 겁주려고 하였다는 색다른 견해를 따르더라도, 정치싸움으로 자로를 죽였는데, 그 醢(형벌에 처해진 자로의 시체)를 그 자리에서 엎어버렸다면, 제후가 공자님을 그냥 두었겠습니까? 자로처럼 자객을 보내 암살할수도 있는것입니다. 공직생활을 거치신 공자님께서 제후들의 권력을 모르시겠습니까? 그래서, 무난하게 직역하거나, 집의 醢(고기류의 육장,젓갈)를 엎어버리게 했다는 약간의 의역이 (검증된 정론서를 바탕으로 그 당시의 전후사정을 충분히 이해하게 해야 할 것), 더 합리적으로 보여집니다. 
 
4. 루머에 보니까 공자님이 醢를 드셨는데, 그 醢를 즐겨먹었다고 하더라는 악의적인 글들이 보입니다. 그러면 육장.젓갈이나 김치에 들어가는 젓갈을 먹는 우리 한국인들도 醢를 먹고있으니까, 인육먹는 사람들이라고 루머 퍼뜨려도 무방하겠습니까?
인지도도 없는 평범한 익명의 사람들이니까 큰 피해는 없겠지만, 성인이나 공인, 위인은 다릅니다. 루머로 치명타를 입게됩니다. 
 
그 당시 중국 춘추시대의 난맥상과 미묘한 전후사정을 잘 모르는 한국인들이 시중에 나오는 괴담이나 일본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의 책을 근거로, 앞뒤가 맞지 않는 공자 인육 취향을 퍼뜨리기에는 너무 많은 한계가 있습니다. 중국에 안좋은 감정을 가지고, 일본에서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억지로 중국의 식인문화를 과장하면서, 공자님까지 끌어들여, 지금까지 수천년동안 아무 문제가 없던 공자님의 행동을 사례로 들고,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요즘 일부 사람들의 세태가 심각합니다. 황하문명을 태동시키고 문명국으로 수천년 이어져 온 중국입니다. 그런데, 루머를 바탕으로 중국은 수천년 식인문화를 가졌다는(물론, 고대의 다른 나라도 루머로 보면 별 차이는 없겠지만) 점을 강조하기 위해, 공자님도 그 당시 사회상을 따라, 인육을 드셨다고 근거없는 주장을 갑자기 퍼뜨리는, 익명성에 가려진 사람들이 문제입니다. 수천년동안 문제가 없던 부분을 쟁점으로, 공자 인육설을 무분별하게 퍼뜨리고 있는 유언비어를 너무 많이 접하고 있습니다. 유교경전이나 교과서, 백과사전, 권위있는 학술서가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아니면 최소한 대중언론의 신문자료라도 제시하면, 그 잘못을 교정이라도 해주겠습니다. 대중언론도 공자인육설을 부정하는 상황에서, 유언비어의 횡행이 얼마나 이어질지 두렵습니다. 
 
5]. 2차 대전중 일본군이 인육먹은 보도기사. 일본 신도(불교), 불교가 대다수인 불교국 일본 사례.
 
(1). 미군 인육 먹은 뉴스.
 
1. 최악의 일본군 인육사건···청년 부시, 희생자 될 뻔 했다. 2018, 12, 08, 중앙일보 채 인택 국제전문기자 보도기사.
[출처: 중앙일보] 최악의 일본군 인육사건···청년 부시, 희생자 될 뻔 했다
 
 
2.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은 포로의 인육 먹으며 술 파티를 벌였다. 2018, 인사이트 김 연진 기자 보도기사.
 
 
(2).중국인 인육먹은 뉴스. 
 
1. 中 "일본군 중국서 위안부 살해해 인육먹어"... 역사 총공세.
 
2015, 08, 16, 연합뉴스 홍 제성 특파원 보도기사.
 
2. 일본군, 위안부 살해 인육 먹었다"...日전범 자백서.
 
2014, 09, 04, 중앙일보 뉴스. 뉴시스 문 예성 기자 보도 인용.
 
3. "한국여성 2천명 위안부로...인육도 먹어"
 
2015, 08, 18, MBN뉴스 안 보람 기자 보도기사
https://www.mbn.co.kr/pages/vod/programView.mbn?uagent=m&bcastSeqNo=1103393
 
4. 中, 일본군 만행자료 공개 "위안부 살해 후 인육먹어" 
 
2015, 08, 17, MBC뉴스 고 주룡 기자 보도기사
https://imnews.imbc.com/replay/2015/nwtoday/article/3752022_30285.html
 
5. [출처: 중앙일보] "곱창인 줄…" 日서 인육 시식 행사 '경악'
 
인간이 잔혹한 이유…동족을 살해하는 유일의 동물 | 연합뉴스 (yna.co.kr)
 
3]. 수천년전에는 기독교도 인육을 먹기는 먹었습니다. 일본은 지금도 날것회가 주식. 중국식당은 음식 끓임.
수천년전 기독교도 인육먹었다고 하지만, 시대변천,인간도 변천.
 
1. 성경에 나타난 식인행위. 기독교 국가의 고대 사례임.
 
2017, 05, 30, 중앙일보 보도. 정 용석(정신과 전문의) 기고. 
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5305546
 
2. 유 승원 목사의 재미있는 성경상식(26) : 성경에 인육을 먹은 사건이...
 
November 2, 2014, MICHIGAN KOREAN WEEKLY 칼럼. 
https://michigankoreans.com/archives/8028
 
3. 중앙아프리카서 보복살해 뒤 인육먹어. 기독교 이슬람 인육.
 
2014, 01, 13, SBS 뉴미디어부 보도기사.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2181246
 
 
6]. 기타.
 
1. 60년만에 장례 치러진 태국 연쇄살인마 "인육 먹는 사람"
 
불교 태국 사례임. 2020, 07, 25, 국민일보 한 명오 인턴기자 보도기사. .
 
 
2. 슬라맛빠기! 인도네시아 "칼 들고 쫒아오던 식인종 후예들"
 
이슬람교 인도네시아 사례임. 2019, 10, 31, 한국일보 고 찬육 특파원 보도기사.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910301387757539
 
3. 호주 크루스선 요리사, 인니 '여자친구'살해해 인육 요리
 
기독교 호주 사례임. 2014, 10, 07, 뉴스1 최 종일 기자 보도기사.
https://m.news1.kr/articles/?1893653
 
4. 러시아 식인부부 인육조리법 노트 발견...과거 식인할머니 사건과 비슷해
 
기독교 러시아 사례임. 2017, 09, 21, 글로벌 이코노믹 백 승재 기자 보도기사.
https://cmobile.g-enews.com/view.php?ud=201709271114002271a8b5e7c93c_1&ssk=favorset&md=20170927114143_R
 
7]. 일제 강점기에 세계종교 유교의 일원국가인 한국 유교를 종교로 인정치 않았는데,해방후 조선성명 복구령에 따라, 모든국민이 조선 유교 한문성씨와 본관을 의무등록, 현재는 5,000만이 행정법.관습법상 유교국. 헌법에 국교는 없음. 일제 강점기에 강제 포교된 일본 신도(불교), 일본 불교, 기독교 및 기타 특수하게 신흥종교로 피어난 원불교등의 주권은 한국영토에 없음.
 
한국은 수천년 세계종교 유교나라.불교는 한국 전통 조계종 천민 승려와 주권없는 일본 불교로 나뉘어짐.1915년 조선총독부 포교규칙은 후발 국지적 신앙인 일본신도(새로 만든 일본 불교의 하나).불교.기독교만 종교로 인정하였는데,일본항복으로 강점기 포교종교는 종교주권 없음.
부처는 브라만교에 대항해 창조신을 밑에 두는 무신론적 Monkey임.일본은 막부시대 불교국이되어 새로생긴 성씨없는 마당쇠 천민 천황이 하느님보다 높다고 주장하는 불교 Monkey나라.일본 신도는 천황이 하느님보다높다고 주장하는 신생 불교 Monkey임.한국은 헌법전문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보장되어, 일본에 선전포고한 상태가 지속되는 나라임.생경하고 급격하게 새로 생긴 마당쇠 천민 천황이 세운 일제 강점기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한국에 남겨진 패전국 일제 잔재며, 마당쇠 천민 학교며, 부처 Monkey.일본 Monkey를 벗어날 수 없는 불교.일본Monkey 천민학교로, 한국 영토에서 축출해야 되는 대상임. 한국 영토에 주권이나 학벌같은건 없이 대중언론에서 덤비며 항거하는 일제 잔재에 불과함.
 
일본 신도는 일본 막부시절 전 주민을 절에 등록한후 일본의 종교체질이 왜곡된후 이를 기반으로 19세기에 독특하게 형성된 불교적.無神論的(後發局地的) Monkey사상으로 판단됨. 부처의 불교는 원래 창조신인 범천에 대항해 일어난 무신론적 Monkey사상인데, 고대에 여러 나라들에 왕성한 포교를해서 널리 퍼졌지만, 중국이나 한국같은 전통 유교국에서는 핍박을받아왔고, 승려들은 공식적인 교육기관도 없이 체계적인 교육도 받지 못해왔으며, 사회적 지위도 별로 높지 않았고, 유교에 빌붙어서 유교의 하부 사상으로 유교적 풍토에 적응해 온 외래 포교종교임.
 
창조신보다 높다는 부처원숭이 불교국가가 된 일본. 막부시대 이후 전 주민을 절에 등록하여 기독교에 대항한 이후, 불교 원숭이 국가가 된 일본. 불교에 기반한 일본 신도는 원숭이 일본 천황이 하느님보다 높다고 예수보다 높다고, 한국 강점기때 기독교를 탄압함. 그리고 국지적 일본 신도와 일본 불교로 세계종교 유교(중국.한국.베트남.몽고 및 전세계 화교)의 일원이던 조선.대한제국 유교를 종교아닌 사회규범 정도로 오도하다가 패전국이 됨.
 
불교발상지 인도에서도 불교신자는 천민계급임.이걸믿는 패전국 일본,태국,동남아 약소국들.불교 Monkey일본은,부처Monkey가 창조주에 대드는것 배워서,성씨없는賤民점쇠(점쇠가 한국에 마당쇠賤民.불교Monkey서울대전신 경성제대 설립)를 천황으로 옹립,하느님보다 높다하다 패전국.한국은 수천년 하느님.유교.공자 나라임. 그리고 고구려 태학,백제 오경박사,통일신라 국학, 고려 국자감, 조선.대한제국 성균관으로 유교교육만 실시하고, 불교는 정규 교육기관없이 하층 주변부. 부처.일본.서울대등은 그 불교 교리에 따라 하느님께 대듦. 일제 강점기 점쇠賤民천황이 하느님보다 높다고하며, 자기들이 들여온 기독교 신부 겁주고, 목사 고문.구타한 일본 불교 Monkey.
 
기자조선때 공자님 이전의 始原유교인 하느님숭배.한자가 유입되었습니다. 일본은 수천년 야만족에, 하느님.유교부정 불교Monkey. 성씨없는 점쇠賤民천황(불교Monkey점쇠가 마당쇠monkey賤民 서울대 전신 경성제대설립)의 불교기반 근친상간(성인야설,야동.한국오염중,안보기.퇴출要) 동물국가 일본. Sex Animal이라고도 하고 Economic Animal로 세계에 잘 알려져 있는 불교 Monkey나라 일본입니다. 왜구 서울대 출신 소라넷등. 한나라때 동아시아(중국,한국,베트남,몽고)에 성립된 세계종교 유교는 수천년동안 하느님(天).오제(五帝).산천신,조상신.공자님을 숭배하면서 지금에 이르렀고 앞으로도 우리의 유교는 지속적으로 발전시켜야 할 하느님.여러 신.성인임금.공자님의 위대한 유산입니다. 
* 본 글은 비영리적이며, 공익적인 글로 세계의 역사와 문화, 대학들을 잘 이해하기 위하여, 관련자료를 인용하였으니 널리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 첨부자료
1. World Class Universities. 2차대전 결과와 상관없이,세계사와 한국사를 바꾸지 못하면, 교과서(백과사전,학습서), 학술서적상의 기득권 대학 학벌들은 바뀌지 않습니다.https://blog.naver.com/macmaca/221012832549    
2. 성균관대,개교 6백주년 맞아 개최한 학술회의. 볼로냐대(이탈리아), 파리 1대(프랑스), 옥스포드대(영국), 하이델베르크대(독일),야기엘로니안대(폴란드) 총장등 참석.  https://blog.naver.com/macmaca/223068858045  
 3. 한국사와 세계사의 연계가 옳음.한나라이후 세계종교로 동아시아의 정신적 지주로 자리잡아온 유교전통. 세계사로 보면 한나라때 동아시아 지역(중국,한국,베트남,몽고지역)에 세계종교 유교가 성립되어 지금까지 전승. 이와 함께 한국 유교도 살펴봄.
한국 국사는 고려는 치국의 도 유교, 수신의 도 불교라고 가르침. 고려시대는 유교 최고대학 국자감을 중심으로, 고구려 태학, 백제 오경박사, 통일신라 국학의 유교교육을 실시함. 유교사관 삼국사기가 정사(正史)이던 나라.https://blog.naver.com/macmaca/222092679769
 4. 한국 최고(最古, 最高)대학 성균관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성균관대.https://blog.naver.com/macmaca/220951235586  

5. 일본강점기때 폐지.왜곡된 성균관. 해방후에 설립(재건승계)된 성균관대학교가 조선(대한제국) 최고대학 성균관을 승계하였다는 정부출연 연구기관.백과사전.성균관대 학교당국의 현대 한국사적 입장에 대한 학술적 고찰. 그리고 한국사의 성균관대(성균관에서 이어짐)와 세계사를 연계하여 해방이후 합법적으로 설립된 敎皇聖下 윤허대학인 예수회의 서강대와의 Royal.Imperial 특성의 공통점 고찰.https://blog.naver.com/macmaca/220198452209  
6. 自然人에 대한 공평한 능력우대와 달리 法人體로볼때, 일본 강점기 잔재 경성제대.관립전문학교 후신 서울대등은  한국영토에 주권없고 축출해야 할 강점기 잔재임은 변하지 않습니다.https://blog.naver.com/macmaca/221553715407  
7. 1915년 조선총독부 포교규칙은 신도.불교.기독교만 종교로 인정하였는데, 일본항복으로 이들 강점기 포교종교는 종교주권은 없는상태임. 일제강점기 수천년 세계종교 유교의 일원인 한국유교를 인정않았음.1915년 조선총독부 포교규칙은 신도.불교.기독교만 종교로 인정하였는데, 일본항복으로 이들 강점기 포교종교는 종교주권은 없는상태임. https://blog.naver.com/macmaca/221555524752    8. 한국은 수천년 동아시아세계종교 유교,하느님,조상신,공자 나라.최고제사장은 고종후손 황사손(이원).5,000만이 조선성명 유교한문성씨.본관 의무등록 행정법.관습법상 유교국.일제강점기 강제포교된 일본신도(불교),불교,기독교는 주권없음.일제강점기 유교를 종교로 불인정.해방후 교육은 유교가 주류.대한민국 초대대통령(이승만)연설문.우리나라 종교 유교 강조,유교 교훈지켜 예의지국 백성이 되자고 설파.아세아 동방 모든나라가 다 유교의 덕화 입었다고 하시며,유교의 교훈 지켜 예의지국 백성이 되자고 훈시.삼강오륜 중시연설.1954.10.1,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이승만) 연설문. 우리나라의 종교인 유교를 강조, 유교의 교훈을 지켜 예의지국 백성이 되자고 설파. https://blog.naver.com/macmaca/221705959106    9. 일본 신도는 일본 막부시절 전 주민을 절에 등록한후 일본의 종교체질이 왜곡된후 이를 기반으로 19세기에 독특하게 형성된 불교적.無神論的(後發局地的) Monkey사상으로 판단됨. 부처의 불교는 원래 창조주인 범천에 대항해 일어난 무신론적 Monkey사상인데, 고대에 여러 나라들에 왕성한 포교를해서 널리 퍼졌지만, 중국이나 한국같은 전통 유교국에서는 핍박을받아왔고, 승려들은 공식적인 교육기관도 없이 체계적인 교육도 받지 못해왔으며, 사회적 지위도 별로 높지 않았고, 유교에 빌붙어서 유교의 하부 사상으로 유교적 풍토에 적응해 온 외래 포교종교임.
창조주보다 높다는 부처원숭이 불교국가가 된 일본. 막부시대 이후 전 주민을 절에 등록하여 기독교에 대항한 이후, 불교 원숭이 국가가 된 일본. https://blog.naver.com/macmaca/221496530197
10. 하느님에 대드는 불교일본의 성씨없는 점쇠賤民 천황이 하느님보다 높고 예수보다 높다고 자기들이 들여온 기독교의 신부억압과, 목사 고문.구타.불교 Monkey 일제강점기의 종교정책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대처할 수 있습니다. 그 불법강점기 당시에는, 수천년 동아시아 세계종교(중국,한국,베트남,몽고) 유교국가중 하나인, 한국 유교를, 종교아닌, 사회규범으로 오도하고, 일본 신도(불교에서 파생된 일본 후발 국지적 신앙. 일본 국교), 불교, 기독교(일본 극소수 신앙)만 포교종교로 하여, 유교가 왜곡되었는데, 최근 다시, 주권없이, 일본 불교 잔재 망령들이 되살아나서, 별 문제없던 유교국가 한국을 다시 왜곡하고 있습니다. @한편, 우주만물과, 만물의 영장인 인간을 창조하신 유교의 하느님. 하느님을 모시는 유교의, 공자님, 가톨릭의 예수님 숭배는 이미 2천년전에 그 기틀이 확립되어 변하지 않습니다.유교의 하느님(天. 주역의 乾元,太極도 통합하시는 하느님이심)은 인간을 창조하시고(시경:天生蒸民), 공자님께 天命(중용의 天命, 논어의 知天命), 天德(논어 天生德於予, 桓魋其如予何? 하늘이 나에게 덕을 부여하셨는데, 환퇴가 나를 아떻게 하겠는가?)을 부여하시는 인격천(天)이시며, 우주만물을 창조하셨고 통치하시는 하느님이시며(주역의 乾元.太極과 연계), 자연천(天)까지 통합하시는 절대적.초월적 하느님(天)이십니다. @브라만에 대항해 후발 신앙을 만든 불교의 부처가 창조주 범천보다 높고 창조주를 가르친다는 Monkey발상 상기시킴. 일제 강점기 불교 Monkey일본이 수천년 세계종교 유교의 일원인 한국 유교를 인정않았음. 그리고 창조주에 대드는 성씨없는 점쇠 천민 천황이 하느님보다 높고 예수보다 높다고 목사 고문구타한 사실. 자기들이 들여온 기독교의 신부억압과, 목사 고문.구타한 사실.https://blog.naver.com/macmaca/223464014560
11. 한국인은 행정법.관습법상 모두 유교도임. 가족관계의 등록등에 관한 법률 제9조 제2항 등에 의해 그렇습니다.https://blog.naver.com/macmaca/220855494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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