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남 살인사건 글 보니까

공지사항 24.07.23
진짜 트라우마 올라와서 너무 힘들다..
하필이면 당시 내 나이도, 사귀었던 기간도 똑같아서.
저런 놈들은 어디서 지들끼리 스터디라도 하는 건가 싶다.

대학 새내기 때 만났던 전남친.
아니 전남친이라는 호칭조차 써주기 싫은 그놈.

당시 나도 모솔이었고, 그놈의 사랑한다는 사탕발림에 속아 넘어갔다.
너무 똑같다.
사귄 지 일주일 정도밖에 안 됐는데 성관계 요구하고 내 몸 만지려 들고 제 몸 만지라 시키고.
내가 불편함을 표현하면 사랑해서 그런 거라고 말하곤 했지.

같이 밥을 먹고 집에 가려던 날, 갑자기 내 손목을 붙잡더니 모텔을 가자 하더라. 지가 예약해 놨다고.
네가 싫어하는 건 안 할 테니 걱정 말라고.
꽉 잡힌 손목이 아팠다.
어떨결에 끌려가는 모양새가 되니 순간 오싹해서 빼려 했다. 근데 빠질 리가 없지.

난 남자 힘이 그렇게 센 줄 몰랐다.
내 몸을 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경험은 처음이었고, 공포감에 휩싸여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고 말았다.
갑자기 눈물이 났고, 가기 싫다고 울었다.

눈물 때문에 앞이 잘 보이진 않았지만, 그놈의 얼굴에 서린 표정은 분명 짜증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쳐다보는 눈빛이 아니었지.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는지 일단 손목은 놨지만, 얘기 좀 하자고 근처 건물 벽 쪽으로 내 등을 떠밀더라.
그러곤 화를 냈다.
니가 거기서 쳐울면 내가 뭐가 되냐고.

그놈의 마지막 말. 혼잣말인 듯했지만 똑똑히 들었다.
'XX 진짜 죽여 버릴까.'
하고는 먼저 뒤돌아 성큼성큼 가 버리더라.
그때 그놈의 눈빛을 잊지 못한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들더라.
'여기 있다간 이놈이 칼 들고 올지도 모른다'

후들후들 떨리는 다리로 미친 듯이 집으로 도망쳤다.
나는 도저히 그놈에게 헤어지자고 말을 할 수 없었다.
다행히 그놈도 내게 연락하지 않았고, 그렇게 흐지부지 헤어지게 됐지만 나는 한동안 그놈이 칼 들고 찾아오진 않을까 싶은 마음에 늘 노심초사했다.

이놈이 내 학교 시간표를 알고 있었기에 일부러 원래 시간보다 훨씬 일찍 출발했고 집에 올 때는 빙 돌아가는 다른 지하철을 탔다.
그리고 빌었다. 다음 학기가 빨리 오기를.

그 여파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한동안 로맨스 장르의 매체를 볼 수 없었다.
사랑해서 그런 거라면서 내 몸을 더듬으려 하는 손길. 제 몸을 만지라는 명령을 떠오르게 했으니.
거리의 손 잡고 있는 커플들을 보면 모텔에 끌려갈 뻔한 그날의 기억이 떠올라 일시적으로 과호흡 증세도 찾아오곤 했다.
밤에는 그놈이 나오는 악몽을 꿨고, 그놈이 좋아하는 음식만 봐도 구역질이 났다.

스트레스로 인해 살도 빠졌고, 이대론 죽을 것 같았지만 그 와중에 정신과가 부담스러웠던 나는 상담센터를 찾았다.
내가 겪은 일을 말하기 위해 그 일을 다시 떠올리는 것도 너무 힘들었다.
그런데, '낌새 같은 건 못 느꼈나요?'란 말에 비수가 박히는 것 같더라.

내심 이상하긴 했었지. 하지만 그때의 난 뭣도 몰랐다.
연애하면 원래 다 이러는 건가 싶었지.
아. 그럼. 낌새를 알고도 진작에 헤어지지 못한 내 잘못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너무 서러웠다.
죽을 것 같아서 알바하면서 열심히 벌었던 돈 바쳐 가며 찾은 상담센터였는데. 이런 말이나 듣고 있자니 눈물이 나더라.

결국 상담은 그만뒀고, 그 이후 내가 어떻게 꾸역꾸역 버텼는지 잘 모르겠다.
예전에 재밌게 잘 보던 로맨스 장르물을 내 눈앞에서 치워 버리고, 꼭 필요한 일이 아니면 밖에 나가지 않았고, 그놈과 관련된 모든 것을 지운 채 그냥 무작정 시간이 해결해주기를 기다렸던 것 같다.

그렇게 어느 정도 일상을 회복하기까지는 대략 반년이 조금 넘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그놈이 그때 진짜로 날 죽일 마음을 품었던 건지, 아니면 그냥 내뱉은 말인지는 알 수 없지만.
몇 년이 흘러 대학 졸업을 앞둔 지금도 종종 이런 생각을 하곤 한다.
만약 내가 그때 어떨결에 모텔까지 끌려갔으면 어떻게 됐을까. 하고.

그리고 나는 그 일 이후로 더는 사랑을 믿지 않는다.
예쁘게 연애 잘하는 주변 친구들.지인들을 보면 부럽다는 생각도 들긴 하지만 또 이런 놈을 만나게 될까 봐 아직 무서운 마음이 더 큰 걸 보면 완전히 회복한 건 또 아닌 모양이다.
나도 인간이기 때문일까. 가끔씩은 질투도 나고, 왜 나만 첫 연애부터 그런 놈을 만난 건지. 세상이 원망스럽기도 하지만.

난 사랑하는 내 친구들이 좋은 사람과 행복하길 바란다.
너희는 이런 일을 겪지 않아서 다행이고, 앞으로 평생 겪지 않기를 바라며.
그냥. 그때 그렇게라도 저항하고, 그렇게라도 잘 버텨준 스무살 어린 나를 안아주고 싶고, 단지 운이 없었을 뿐이라고, 내가 잘못해서 그런 놈과 엮이게 된 게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다.

마지막으로. 그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될 수 없겠지만.
한순간에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마음을 감히 헤아릴 수는 없지만. 깊은 애도의 말씀을 전하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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