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외모 강박이 심해서 늘 마른 몸을 유지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살았어요. 식탐은 없지만 식욕은 강해서, 먹은 만큼 살이 찔까 두려워 먹고 토하기도 하고, 또 어느 날은 폭식하고 속이 더부룩해서 토하기도 했어요. 그러면서도 하루에 세네 시간씩 자전거 타고 걷고 그랬죠. (어머니가 가슴살은 빠지면 안 된다고 해서 줄넘기나 달리기도 못했어요.)
운동하니까 건강할 줄 알았는데, 결국 식도염, 위염, 피부 두드러기, 치아 부식까지 오더라고요. 그래도 집에서는 "여자는 말라야 한다", "여자는 못생기고 살찌면 사람 취급 못 받는다"라는 말이 늘 들렸고, 바깥에서는 예쁘다는 칭찬과 내게 친절한 대부분의 사람들... (근데 사실 그렇게 예쁘지도 않은데 말이죠ㅋㅋㅋ)
사람들이 정말 좋은 분들이 많았지만, 속으론 항상 의심했어요. ‘내가 살쪄도, 지금보다 못생겨져도, 나한테 똑같이 대해줄까?’ 하고요. 하지만 난 성격이 좋은 편이고, 늘 남에게 먼저 양보하니, 날 있는 그대로 좋아해주는 걸 거라 믿으려고 계속 노력했어요.
휴학했을 때, 정말 행복했어요. 하고 싶은 알바하면서 공부도 하고, 외적인 칭찬도 별로 없고, 알바할 때 만나는 분들은 거의 다 어머니 뻘이었는데, "얼굴이 예쁘다"는 말보다는 "참하다", "부모님이 행복하시겠다", "어떻게 그렇게 착하게 자랐냐" 이런 말들만 들으니까 마음이 따뜻해지더라고요. 그분들이 챙겨주시는 대로 먹고, 운동도 억지로 오래 하는 게 아니라 즐겁게 딱 1시간 정도만 하고 끝냈죠. 이 시기에는 폭식도, 먹고 토하는 일도 안 했던 것 같아요. 그냥 그런 분들이 내 부모님이었으면 하고 바랄 때가 많았을 뿐...
어쨌든, 행복하게 살면서 마음껏 먹고, 그러면서도 살찐 내 모습이 귀엽고 예쁘다고 느껴졌어요. 부모님이 아무리 혼내도, 바깥에서 어르신들이 주시는 행복과 자존감 덕분에 오히려 가족의 말에 상처를 덜 받게 됐죠. 갑옷 같은 게 생긴 거예요.
휴학하고 나서 몸무게가 10kg 정도 찌고, 복학했을 때 달라진 남자동기들... 그들이 절 낮춰 말하는 평가들...
"살만 빼면 내가 만나줄게~", "너 살만 다시 빼도 진짜 너 좀 살이 많이 쪘다?", "이제 우리과 간판은 못 되겠다~" 뭐 이런 말들...
알바도 그만둬서 갑옷도 점점 약해졌고, 사실 무시하려면 얼마든지 무시할 수 있는 그나이대의 남자들이 할 수 있는 장난인데, 너무 신경 쓰였어요.
그러다 보니 급하게 살을 빼려고 아예 굶고, 조금이라도 먹으면 후회돼서 또 먹고 토하고... 건강이 너무 나빠져서 응급실도 자주 갔어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런 생활을 반복할수록 살이 빠지는 게 아니라 튼살이 생기고 요요가 더 심하게 오더라고요...
응급실에 자주 가고 위가 아파서 내과를 다니던 중에, 내과 의사 선생님이 정신과에 가보는 게 좋겠다고 하셨어요. 그때 갔으면 좋았을 텐데... 그리고 생각해보면, 살이 쪄도 대학생활엔 아무 문제 없는데, 사람들이 절 보고 수근거릴 것 같고, 식이장애로 병원을 자주 가다 보니 결국 또 휴학하게 됐어요.
휴학하는 동안 어머니가 계속 다이어트 약이라도 먹으라고 화내셔서 결국 약을 먹었어요. 잠도 못 자고, 부정맥에 예민해지고, 입도 마르고... 근데 효과는 좋았죠. 다만, 약을 멈추면 더 심한 요요가 오더라고요.
그렇게 반복하다 보니 총 40kg 가까이 쪘더라고요. 약속도 못 잡고, 복학하기도 두려웠어요. 하지만 졸업은 해야 하니까, 복학해서 더 심한 외모 관련 장난을 듣고 졸업하고... 취준 생활 겪고, 결국 취업했어요. 그런데 운이 좋게도 좋은 직장 동료를 만나서 다시 갑옷을 얻었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예전 휴학했을 때 몸무게로 돌아가더라고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10kg 쪘던 몸무게가 제 몸에 딱 맞는 적당한 무게였던 것 같아요. 마르진 않아도 건강해 보일 수 있는.
이제 30대 중반이 됐는데, 아직 외모 강박이나 타인의 시선에서 완전히 벗어나진 못했지만, 그래도 많이 좋아졌어요. 정말 감사하게도, 취업 후부터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많았거든요. 살이 찐 상태든 빠진 상태든, 그 모습 그대로 한결같이 절 대해주는 사람들이 제 곁에 있었어요.
이제는 그들이 없어도, 주변에 절 낮추는 사람이 있어도 영향받지 않고, 스스로 갑옷을 입고 살아갈 수 있게 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살이 쪄도 괜찮고, 빠져도 물론 괜찮고, 외적으로 어떤 상태든 건강만 하면 돼요.
원하는 체형이 있다면 그 체형을 위해 노력하되, 절대 그 체형이 되지 못했다고 자신을 자책하지 마세요. 40kg 가까이 쪄도 한결같은 사람은 한결같이 절 사랑해주더라고요.
과거 사진을 쭉 보다가 살 쪘을 때의 사진이 한장도 없는 걸 보며 그때 제자신을 얼마나 미워하고 창피해했는지. 그 소중한 시기에 남겨둔 사진이 왜 한장도 없을까 아쉽기도 안타깝기도하고.. 혹시라도 외모 강박으로 심적고통을 심하게 받고 있는 분들이 있을까 해서 글 써봐요.
시간이 지나면 너무나도 청준이고 아름다운 시기더라고요. 지금의 나를 너무 미워하지말고 예뻐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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