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런 생각을 해도 되는 걸까

공지사항 24.11.27
난 좋은 부모 밑에서 자랐어
지난 일이지만 어릴 적 암에 걸렸었고 오빠도 둘이었기에 나는 오빠들보다 더욱 신경쓰고 사랑받으면서 자랐어
나는 유독 첫째 오빠를 좋아했었고 그런 오빠는 걸핏하면 오빠들을 부모님께 꼰지르고 쫑알쫑알 말만 많고 시끄럽기만 하던 나를 되게 싫어했었어
그래도 가끔 쿡쿡 웃으며 장난칠 때도 많았던 터라 진심으로 싫어하는 것 같진 않았어
반대로 둘째 오빠는 내게 되게 잘해주었어
귀찮을 정도로 달라붙었고 애교도 은근 많았고 지금 생각하면 귀엽다고 느끼는 면도 많아
오히려 내가 놀아줬었어
하지만 그때 당시 첫째 오빠를 더 좋아했기에 둘째 오빠에게 못되게 굴고 잘해주지 못한 부분이 많아
지금 생각해도 그게 너무 후회가 돼
이럴 줄 알았으면 그때 더 잘해줄걸
이렇게 될 걸 알았으면 못되게 굴지 말걸
그날은 오빠가 엄마에게 화가 나 예민한 상태였어
오빠가 방에서 안 자고 쇼파에 누워 잠을 청하고 있었는데 아빠가 술에 취해 들어왔어
엄청 늦은 시간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저녁이라기엔 늦은 밤이었어
그땐 아빠가 술에 취해 들어오는 게 일상이었어
엄마 말로는 아빠는 원래 술을 안좋아했대
하지만 회사 다니다 보면 회식도 있고 사람들도 많이 만나고 이래저래 많이 먹게 되잖아?
아빠는 바쁘셔서 우리를 만날 시간이 술에 취해 들어오는 밤밖에 없었어 나도 오빠들도 학교에 가야하니까
그래서 그날도 술에 취해 들어오셨는데 하필 거실 쇼파에서 자고 있던 오빠가 눈에 들어온 거야
오빠들은 어렸을 때부터 잘못하면 엎드려서 아빠한테 야구방망이로 맞았어
아빠는 학대 목적은 없었을 거야 그때 당시 아동학대가 법적으로 크지 않을 때기도 했고 아빠도 오빠들을 좋은 쪽으로 이끌고 싶어서 그랬을 테니까
단지 표현 방법이 잘못됐을 뿐이지
나랑 엄마는 아빠가 아예 잘못이 없다는 건 아니지만 표현이 서툴러서 그런 거라고 이해했어 그런데 오빠들은 못하는 것 같아 어찌보면 못하는 게 당연해
어렸을 때부터 직접 맞아온 당사자들은 절대 이해할 수 없을 테니까
평생 트라우마로 남을 수도 있겠지
아빠는 오빠들한테만 그런 것도 아니었어
화가 많으셔서 그런지 엄마한테도 자주 화냈어
엄마는 그럴 때마다 울 것만 같은 표정을 지으시며 꾹 참으셨고 나는 언젠가 이러다 한 번 크게 터지는 거 아닌가 싶었어
그게 그날이었어 오빠가 변한 날
아빠가 자는 오빠 위로 올라가서 치근덕댔고 엄마는 그런 아빠를 말렸어
하지만 아빠는 그 좁은 공간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고 결국 쿵소리를 내며 오빠가 쇼파에서 떨어졌어
안 그래도 싫어했던 아빠인데, 얼마나 싫었을까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오빠가 이번 일로 아빠를 더욱 싫어할 것 같아서 불안했어
아빠를 이대로 평생 미워하게 되는 게 아닐까 언젠간 집을 떠나는 게 아닐까
그리고 뭔가 안 좋은 예감이 들었어
뭔가 오늘 크게 한 번 터질 것 같은 느낌
오빠가 화났는지 그대로 쿵쿵대며 방으로 들어갔고 방문을 쾅 닫았어
곧이어 안 좋은 예감은 현실이 됐어
나는 그때 아무것도 못 들었는데 엄마 말로는 오빠가 방에 들어가면서 작게 욕을 했나봐
그걸 듣고 아빠도 터진 것 같아
아빠가 잘못한 게 맞는데 뭘 잘했다고 터져서 그랬냐고?
맞아 아빠가 잘못한 게 맞아
근데 아빠도 지난일을 후회하셨는지 최근 화를 잘 내지 않으셨고 오빠들한테도 잘 대해줬었어
아빠 입장에선 그게 최선을 다해 노력했던 거고 나와 엄마 눈엔 그게 보였어
하지만 오빠들 눈엔 안 보였나봐 아빠는 아빠 입장에서 노력하며 최선을 다했는데 정작 오빠들은 몰라주니까 설움이 터지신 것 같아
아빠가 소리 지르시며 오빠 방으로 들어가려고 했어
엄마는 아빠를 끌어안고 말렸어
나는 무섭고 두려워서 덜덜 떨며 방에서 지켜보기만 했어
결국 아빠는 오빠의 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갔고 엄마는 방 밖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제발 그만하라고 소리 지르시며 우셨어
엄마는 죽어버릴 거라고 이대로는 못 살겠다고 오빠 건들면 진짜 죽어버린다고 하더니 주방으로 향하는 거야
나는 그때 심장이 철렁했어
칼을 들고 오려나? 정말 죽으려고 하는 걸까? 어떡하지? 싱크대로 향하는 그 짧은 순간에 수백만 가지의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어
다행히 엄마는 잠긴 문을 따려고 젓가락 하나를 들고 문쪽으로 가시더라
진짜 식겁하고 무서웠어
난 무섭고 더 이상 보기 싫어 내 방에서 문을 닫고 이불을 뒤집어 쓴채 벌벌 떨었어
얼마 안 지나서 엄마가 제발 그만하라고 경찰이 왔다며 소리치셨어
그 말에 깜짝 놀라 거실로 나가 인터폰을 확인하니 인터폰은 밖에서 벨을 눌러 이미 켜져있었고 경찰 두 명이 서있더라
인터폰 화면을 보자마자 문을 두드리더니 문 좀 열어달라는 경찰의 목소리가 들렸어
난 아직도 그 장면이 머릿속에서 잊혀지질 않아
결국 엄마가 문을 열어주고 경찰이 들어와서 일이 흐지부지 마무리 됐어
경찰 한 분이 애가 사춘기 땐 그럴 수 있다고 본인도 오빠 또래 애가 있어서 아는데 많이 힘들다고 사모님께서 잘 참으셨다며 엄마를 달래 진정시켜주셨어
밖까지 소리가 다 들렸나봐 이웃집 분이 큰 소리에 신고하셨대
들릴만도 하지 안 들리는 게 이상할 정도였으니까
그 다음날 학원 갔다 와서 보니 아빠가 방 문을 주먹으로 치셨는지 문에 구멍이 두 개나 뚫려 있었고 엄마는 내가 전날 학원에서 영어쌤이 뽑아주신 곰돌이푸 영어 책 프린트를 뚫린 구멍 위에 붙이시더라
그 모습을 보고 울뻔했어
프린트로 구멍을 가리려고 붙이는데 프린트 안에 귀여운 곰돌이 푸가 해맑게 웃고 있는 모습 때문인지 더욱 비참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이 아려오더라
그 사건 뒤로 오빠는 한마디도 안했어
아빠는 물론 나한테도 말을 안했어
지금은 꽤 좋아졌지만 초반엔 엄청 심했어
정말 살기 싫어지더라
이렇게까지 하면서 아빠를 변호하고 있는 엄마도 이해가 안 가고 아빠만 없었으면 행복했을 가정이 괜히 아빠 때문에 파탄난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그냥 다 아빠가 망친 것만 같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고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너무 소름 돋고 역겹다고 느껴지고
이젠 예전처럼 행복한 우리 가족으로는 절대 돌아갈 수 없다는 게 참 슬펐어
근데 이미 지난 일이고
지금은 엄마도 아빠도 오빠도 많이 좋아졌고 전처럼은 아니지만 그래도 평범한 가정으로 돌아온 것 같아서 ..어 응.. 많이 좋아진 것 같아
그래서 오빠한테 못되게 군 게 너무 후회됐어
그래도 최근까진 되게 행복하고 좋았는데
진짜 친구 사귀지 말까봐
너무 힘들어
학교 생활하면서 중요한 버팀목 중 하나가 친구잖아
난 그런 버팀목 하나 만들지 말라는 걸까?
인정받으려 노력해도 내 노력을 알아주는 사람은 없고 정말 그러려고 한 게 아닌데 딱 한 번 그런 걸로 억울하게 미움받고..
난 미움받기가 싫었단 말야
정말 죽도록 싫었어
사랑받고 싶었어
대단한 걸 바란 게 아니야..그냥
그냥 모든 사람에게 좋은 이미지로 남고 싶었어
학교에서 한 번도 울지 않고 웃기만 했고
반응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면 머쓱했지만서도 그냥 웃어넘겼어
친구 관계든 뭐든 항상 내가 매달렸어
미움받고 싶지 않아서
버림받기 싫어서..
내가 너무 큰 걸 바란 걸까?
대단한 걸 바래놓고 그렇다고 생각하질 못하는 걸까?
진짜 아무것도 하기 싫어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 같아
나만 세상에 혼자 남겨진 것 같아
모두가 나를 미워하는 것만 같아
현실에서 살기 싫을 때 그나마 게임으로라도 기분을 풀며 예쁨받았어
반응이 재밌다고 해주었고 말투가 귀엽다고 하며 예뻐해주고 그랬어
현실보다 편하고 좋다고 느껴서 계속 온라인 세상으로 버텨왔는데
엄마아빠는 그런 것도 모르면서 자꾸 그만하라고만 해.. 물론 내가 너무 많이 하는 것도 맞아
중독인 것도 맞고 그것 때문에 공부에 욕심을 가지지 않는 것도 맞아 노력도 안해
내가 내 얘길 안 하는 것도 맞고 힘든 걸 티낸 적도 한 번도 없어서 모르는 것도 맞아
말할 생각은 없지만 말해봤자 엄마는 이모들한테까지 말해 조언을 얻을 것 같고
나는 엄마만 알고 나를 위로해줬으면 좋겠는 건데 그걸 다른 사람한테까지 말해서 그런다니까 그런 생각만 하면 너무 싫어서 더더욱 못 말하겠고
그냥 말하기도 싫고 이런 걸로 엄마를 귀찮게 하고 싶지 않아 신경쓰게 하고 싶지 않아
이젠 진짜 못 버티겠어
나 너무 힘든데
살고 싶지 않은데
웹툰이나 애니 같은 것도 진짜 많이 보면서 힐링해
물론 웹툰이긴 하지만 애니이긴 하지만 진짜 힘든 주인공들이 가끔 나오잖아
실제로도 분명히 그런 사람이 있을 거고..
원래 누구나 내가 제일 힘들다는 생각하는 것도 알고 그런 거 다 아는데
그런 거 다 알아도 진짜 힘든 사람들 보면 내가 힘들어할 자격이 있나 싶고
그런 사람들에 비하면 내가 생각하고 느끼는 이 힘듦이 마냥 하찮게만 느껴지고 뭘 그런 걸로 힘들어 하냐고 생각할 것 같아서 아무에게도 못 털어놓겠어
애초에 내 얘기 잘 안하는 편이기도 하고 이런 얘기 친구한테 해서 괜히 친구가 이런 지루한 얘기 들으면서 반응을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하는 것도 보기 싫고 그냥 친구들과 있을 땐 그저 즐겁게만 행복하게만 있고 싶어서 일부러 웃기려고 장난도 많이 치고 그러는데 친구들은 내가 하는 말마다 재밌는지 진심으로 웃어주고 그러는데 그럴 때면 나도 웃음이 나고 아무 생각 없이 같이 웃으면서 진짜 기분좋은데
난 그게 너무 행복하고 살 맛 났는데...
그나마 현실에선 그 맛으로 버텨왔는데..
이젠 없어졌는데 어떻게 해야 해?..
고작 이딴 거 가지고 힘들다고 여기다 글 쓰면서까지 위로 받으려고 지랄하는 걸로 보여서 진짜 한심하고 찌질하다고 생각할 것 같고 그냥 병신처럼 볼 것 같아서 무서워
나 진짜 사랑받고 싶어
미움 받기 싫어
나도 웃음이 끊이지 않는 삶을 살아보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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