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감정쓰레기통

공지사항 25.01.02

여기서 글은 처음써봅니다. 긴 글이지만 저와 비슷한 상황을 겪는 분들도 많을 것같고 어떻게 해야할지 좀 답답한 마음에 써봅니다.
대학에 들어오고 나서 자취한지 이년 된 대학생입니다.
원래 주말마다 본집에 들렸지만 올때마다 자주 가치관 차이로 엄마와 마찰을 겪기도 했습니다. 가족중에 엄마와 길게 대화를하는 사람은 저뿐이라 이건 뭐 어쩔 수 없는 당연한 현상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학창시절에 본집에 있으며 너무 잦은 엄마의 힘든 이야기를 들으며 감정쓰레기통이 되는 기분을 자주 느꼈습니다. 아빠와 동생은 엄마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으며 엄마도 시도해봤지만 대화가 이어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동생은 아예 대놓고 듣기 싫어서 짜증을 냅니다. 엄마의 이야기가 시작되면 조용히 방에 들어가서 대화를 피합니다. 지금 생각하면 동생이 참 똑똑한것 같습니다. 엄마의 주된 이야기는 친할머니 이야기라서 아빠와는 애초에 대화할 수 없는 주제이기도 합니다. 여러번 시도해봤지만 더 큰 문제로 번지더라구요. 이 문제로 저희가 어렸을때 참 심하게 많이 싸웠습니다. 그래서 제가 초등학생때부터 엄마한테 입에 담을 수 없는 말들과 행동을 한 친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는 전부 제가 묵묵히 들어왔습니다. 사실 친할머니라고 부르기도 싫어요. 진작 이혼하지 않은 엄마가 대단하고 엄마한테 미안합니다. 그땐 동생과 제가 어렸으니까요. 엄마의 어린 시절 결핍과 친엄마와 시엄마에게 당했던 것들은 창피해서 어디가서도 말 못한답니다. 이해합니다. 저같아도 그럴 수밖에 없을것 같습니다. 엄마가 참 인복이 없어요. 엄마가 마음이 약해서 자신에게 심하게 못되게 구는 사람한테도 그래도 가족이니까 마인드로 너무 잘해줍니다. 저는 그게 좀 미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렸을때 엄마가 술을 마시면서 저에게 이야기하면 너무 속상했습니다. 오죽하면 초등학생인 나에게 이럴까 싶어서 그 이야기를 듣는 내내 너무 속상하고 힘들어도 열심히 들어주고 이야기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중학교 고등학교에 올라가서도 자연스레 그 이야기들을 듣는것은 제 몫이였습니다. 정말 속상한게 시간이 지날수록 내 엄마를 힘들게 한 그 사람들이 너무 싫고 죽여버리고싶은데 이런 이야기를 매번 반복해서 듣는것이 지겨워졌습니다. 엄마는 그렇게 힘들고 몸까지 악화돼서 죽을 고비를 넘겼었는데 들어줄 사람은 나밖에 없는데 저도 나이를 먹을수록 엄마가 저를 의도치 않게 감정쓰레기통으로 사용하는것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크게 화낼 수도 없었습니다. 엄마가 너무 불쌍하고 그냥 이제 좀 행복하길 바랐습니다. 더이상 듣기가 싫었어요 엄마의 힘든 이야기를 . 물론 한번도 이것에 대해 화낸적이 없는건 아니지만 저도 중학교에 올라갔을 시기에 이미 엄마의 우울에 동화되고 감염된 상태여서 저 또한 힘든 시기를 겪었습니다. 엄마가 겪은 시기에 비하면 별거 아니겠지만 저도 본집에 지내면서 꽤나 정신적으로 불안정하게 살았던것같습니다. 그걸 대학 들어와서 기숙사에 들어와서 가족들과 떨어져사니까 그제서야 알았습니다. 머릿속이 싹 비워지고 별 생각없이 살 수 있어서 너무 행복했습니다. 이게 정상인들의 삶인가 싶기도하고 이러다보니 자연스레 본집에 오는 횟수가 줄어들더라구요 솔직히 가기 무서웠습니다. 잠깐 주말에 들리는 그 사이에도 엄마는 저를 잡고 몇시간이고 이미 10년전에도 들은 이야기를 반복하십니다. 솔직히 이제 지겹습니다. 정말 다행히도 우리 가족이 너무너무 힘들었던 시기는 넘겨서 이제는 그때보다 조금이라도 가벼운 마음으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주말에 잠깐 들리는 본집에서 학창시절로 돌아간것같은 우울감을 겪습니다. 그냥 제가 본집에서 멀리떨어져 이 현실을 회피하고 있었던것같은 기분이 듭니다. 이제 종강했으니 오랜만에 본가에서 지내게 됐습니다. 며칠안됬는데 벌써 그 숨이 막히는 기분이 드네요 우울증이 심했던 시기의 가슴 답답함이 느껴져요 동생도 오랜만에 보고 엄마 아빠랑 맛있는것도 먹으니 좋긴한데 엄마의 이야기를 듣고나면 이틀동안은 그 여운이 가시질 않습니다. 엄마도 알고계셔요. 저한테 이런 얘기 너무 많이 하면 안좋다는걸 근데 엄마가 이제는 너가 커서 그래도 마음이 놓인다 동생도 이제 곧 성인이니 너네가 어렸을 시절보다 너무 좋다라고 말하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며 성인이 된 지금도 예전과 다름없이 제가 엄마의 감정쓰레기통이고 제가 더 나이를 먹어도 지금과 크게 다를것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제 십대 시절이 엄마에 대한 고마움과 엄마에 대한 원망이 섞인 아이러니한 감정으로 망가진것같은 기분이 듭니다. 엄마가 10대때 친엄마에게 겪은 결핍을 50이 넘은 이나이에도 아직까지 제게 이야기하는걸보면 저도 나이를 먹어서 이게 큰 결핍으로 남을것 같습니다. 엄마가 겪은 결핍보다는 덜할 테지만 앞으로 살아가면서 이 상처를 그냥 묻고가기엔 두렵고 묻을 수 있을 줄알았는데 그럴수가 없을것 같습니다. 막상 마무리하려니까 어떻게 끝내야할지모르겠습니다. 저도 제 이야기를 좀 하고싶은데 이 이야기가 지인한테 할 수도 없는 이야기이기도하고 그냥 여기한번 저도 푸념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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