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배주의자의 사는 얘기 끄적끄적

공지사항 25.01.18
저희아빠는 서류상 68년생이지만 실제론 65년생 입니다
저희엄마는 82년생입니다 저는 97년생이에요
엄마의 언니였던 이모께서 출생이유를 알려주셨어요
아빠한테 물어본적은 없습니다
스스로가 진실을 마주하기 어려웠기에 혼자만의 기억으로 갖고있어요
의심없이 납득한 이유는 아마 나이차이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것때문인지 어릴적 아빠의 동생이신 고모가 저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느끼고 있었어요.

엄마는 저를 낳고 2살터울 남동생을 낳으시고 20살 되는해에 집을 나가셨어요
저는 갓난아기 시절부터 아빠친구분의 어머님, 저에게는 할머니 손에서 자랐고
남동생은 엄마의 언니, 이모손에서 자랐다고 해요
그 영향인지 저는 일찍이 한글을 깨우쳤지만
동생은 중학생때도 한글이 어리숙해 당시 지내던 보육원에서
장애인등록을 권유해 지적4급장애인이 되었습니다.
절대 지적장애등급을 받을 동생이 아닌데 스스로가 많이 위축되어있어서 벗어나고싶지 않아해서 지금도 많이 안타깝습니다

초등학생시절엔 아빠가 두남매를 케어하기 어려워 그냥 막 살았어요
학교 안가고싶으면 안갔고 아빠 지갑에서 돈도 많이 훔쳤고
아빠 핸드폰으로 소액결제도 많이했었습니다
다행히 출석일수는 채웠는지 제적은 안당했어요

어린시절은 아빠가 다니던 회사기숙사에서 지냈어요
문과 창문이 없어서 비닐로 막아두고 생활했었어요
저희가 나가고 얼마안있어 기숙사가 없어진걸보아 저희때문에 허물지 못했고 어차피 헐릴 건물이니 보수도 안해줬던 것 같아요
천둥치는 날이 제일 무서웠습니다 바람과 소리를 막아줄 문이 없으니 밖에서 듣는것만큼 생생했거든요 비닐이 바람에 펄럭거리는 소리가 제일 무서웠어요 오히려 밖이 더 안전한 기분이 들었었어요

어릴적 제가 기억하는 아빠의 출퇴근시간은 오전 4-5시 늦으면 오후 10시까지도 일하셨습니다. 화물차 운전기사셨구요
저희 케어는 고사하고 집안일을 할 여유조차 없으시니 집은 늘 엉망진창이었어요
친구들이 우리집에 오면 불쌍하다, 거지집 이라고 했고 저희집에서 나는 냄새에 구토를 한 친구도 있었어요

중학생이 되고 교복을 입고 방황하고 있던 저를 발견하신 복지사님께서 케어가 필요하다는 걸 알고 저희를 시설을 거쳐 보육원에서 지낼 수 있도록 도와주셨어요

그리고 고등학생때 잘못을 하게 된 걸로 벌을 받게 될 상황이 생기자 벌을 받기 싫었던 저는 가출을 하고 그 길로 보육원을 나오게 되었습니다. 아빠와 함께 반지하집에서 살았고 같이 놀던 친구가 옷에서 이상한냄새가 난다고 하던 게 화근이 되었는지 내 몸에서 냄새가 날까봐 버스나 전철을 탈 땐 내 옆에 앉은 사람이 냄새를 맡을까 늘 서서다녔고 아침마다 샤워를 40분간 했었습니다.

우울한 감정을 정리하고자 적어내려갔는데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됬네요 이만줄이겠습니다
끝까지 봐주신분이 계신다면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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