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생 회사대표 더러운짓

공지사항 25.02.16
이야기를 어디부터 써나가야할지 막막하지만
용기를 내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같은지역 남자를만나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낳고 20년을 직장 생활을한 그냥 40대 보통 아이엄마입니다

26살즈음 25살 한살어린 그당시 말년병장이였던 지금신랑을 만나 연애를 시작했어요

저는 얼마안되는 월급쟁이였고
신랑은 막 제대해서 취업을 준비중이였죠

다른연인들처럼 사랑도하고 싸우기도하고 몇번을 반복하다가 보증금200 월27만원 작은 방을 하나 얻어 동거를 시작했습니다 혼자 번돈으로 방세며 생활비를 하니 막상 제가 쓸 로션하나 못샀 습니다
그래도 지금생각해보면 제대로 된 살림살이 하나 없는 그때가 정말 행복했네요

시골에 계신 시아벗님이 갑자기 건강이 악화될즈음
누나 둘에 막내아들이였던 신랑은
그동안 속만 섞인게 마음이 많이 걸리는지 아벗님 돌아가시기전에 결혼도하고 손주도 안겨드리고 잘사는모습 보여드리고싶다고 얘길 꺼내더군요

2007년 2월에 준비가 덜된 우리둘사이에 첫애가 생겼어요
결혼전이라 비밀로 하고 조금씩 나오는배를 붕대로 동여메고 출퇴근의 반복

매일 퉁퉁부운다리 하루가 다르게 부르는 배,,
도저히 더는 지체할수없게되어서야 부랴부랴
그해 초여름에 웨딩홀에서 결혼을했습니다
그날 덜덜떨리던 손으로 내손을 꼭잡던 친정아빠
떨지마떨지마~ 신부보다 더 덜덜 떨던 아빠
아빤,, 경제적으론 정말 무능력하고 돈 못버는 가장이였지만
그래두 남자 혼자 언니랑 저 두딸을 끝까지 잘 키워주셨어요

우리부부는 양가가 다 형편이 좋지않아서
친구들이 모아준 돈
지인들이 보태준 돈으로 신혼여행을 떠났어요 아!!첫날밤은 터미널뒤쪽,,작은모텔이였는데 식 끝나고 원룸가기가 쫌 그렇더라구요

보라카이
둘다 생전 첨가는 외국,, 처음타는 비행기
임신 5개월차 몸이 고단한줄도 모르고 얼마나 열심히 싸구려 커플티를 입고 다녔는지 신혼여행이 아닌 극기훈련이라 착각들만큼 3박4일을 정신없이 놀았습니다

다시일상 우리둘만의 원룸으로 들어와 신랑은 취직한 회사에 자리를 잡아갔고 저는 열심히 출근을 하고,, 아이가 태어나기전 조금씩모은돈으로 작은원룸에서
방두개짜리 새건물
투룸으로 이사를했어요
따뜻한 방바닥 깨끗했던 벽지가 얼마나 좋은지,,,
세상부러울게 없었습니다

2008년
마찬가지로 퇴근하고 집에온 그날새벽 예정일 3주남기고
양수가 터지며 혼자있던 저는 울면서 짐을 싸고 아침이되어서야 택시를 불러 병원에 가서 수술로 첫아이를 오후 다섯시쯤 출산을 했습니다
참,, 그날 아이아빠 얼굴도 못봤네요 산부인과 원장님이랑 수술문제로 티격태격하고 싸우는목소리만 옆에서 듣고
나는 곧 죽는다죽는다 울고,,

그렇게 태어난
순하고순한 아이
산후조리 할때가 마땅치않아서 재왕절개 한 처음1주는 병원 산부인과 입원실에
2주3주째는 시골 조리원에
퇴원후
1주는 투룸에서
아이분유 기저귀값이 걱정되어 4주 딱 지나 28만에 덜빠진 붓기와 함께 출근을 했어요

신랑도 동대문이나 인터넷에서 싸구리 정장만 구입하고 만원에 두세개주는 넥타이를 사서 돌려입고
다른사람 비유맞추며 말그대로 상품을 팔러다니고,,
가장노릇 열심히 했습니다
월급이 정해진 액수가 아니라 당시 생활비를 한번도 안줬지만 그래도 기특했어요
쉬는날없이 둘이 정신없이 일을하고 아이는 고모께 월70을 주며 전담으로 맡기고 ,, 모유한번 제대로 못 물리며 키웠지요

그다음해 4월쯤 손주 돌잔치를 못보시고 결국 아벗님은 생을 마감하셨고 슬픔은 점점 잊혀갔어요

다행인지 재능인지 신랑은 영업쪽으로 탁월한 수완이 좋았고 뛰어난 언변으로 하루가 다르게 실적을 쌓아가고 온갖상여금을 휩쓸더니
어느덧 젊은나이에 회사의 대표님이 되고
차를바꾸고 큰집으로 이사를가고 또 그사이 둘째가 태어나고 한달 출산후가 동안 운전면허를 바로 딴 나에게 베이지색 모닝을 일시불로 멋있게 뽑아주던,,
그렇게 정신없이 두 남매를 키우며 시어머니와 함께 16년을 살았습니다

수도없이 부딪히고 미워하고 사랑하고 그렇게 사랑은 점점 옅어지고 의리로 사는 부부가 되었습니다

내나이 40중반,, 더이상 이대로 못살겠다며 나쁜며느리 나쁜아내가 되어 분가 선언을 하고 지금껏 곁에서 도와주신 시어머니를 이사 시켜드리며
혼자 울기도 많이 울었어요 나쁜년맞아요 나이드니 어멋님 내쫒은 독한며느리 모자사이 갈라논 매정한 와이프 두명의 시누들 눈치주는 나쁜 올케

그욕을 얻어먹고도 사람이 정말 간사한게
좋더라구요 행복하구요 퇴근하고 집에 올 맛이 나고 밖으로만 돌던내가 퇴근시간 주말시간을 기다리는 낯선모습 쓰고싶던 접시도사고 버리고싶은거 갖다버리고 샤워 후 옷도 맘대로 입고 거실에 대짜로 누워도보구
결혼후처음으로 집순이가 되었어요 ,,

아무리 생각해도 그벌을 대신에 이런 시련?아픔 고통을
준다기엔 너무 ,,너무,, 억울하잖아요

어느덧 생활비 0원에서. 150만원 200을 주던 짠돌이 신랑은 250만원을 주고 300을주더니 작년인가..? 올핸지 아무튼 월 400이라는 거금을 가져다주며 그사이 저도 직장연차가 있으니 월급도 오르고
너무 살맛났습니다
주위에서 부러워도하고 신랑잘만났다 시집잘갔다 어깨가 얼마나 치솟던지,,

살면서 이혼을 생각안한건 아니지만
잘 참고살았다 서로 위로해가며 어느날은 원수처럼 서로에게 상처를주고 어느날은 찐친처럼 술한잔먹고 기분좋아 수다떨고

어느덧 결혼 15년차
젊은 나이에 큰돈을 벌고 해외로 국내로 수시로 골프여행과 모임과 접대를 다니던 잘나가는 신랑에 대해 뒷말을 안들은건아니였어요
정말 기가막힌얘기들 진실이 섞인 부풀어진 소문들
대낮 무인텔 얘기부터 스폰,,불륜골프여행
당연히 거짓말이라고
내신랑은 누구보다 내가 잘안다고 자만했던걸 생각하면 정말 부끄럽습니다
제가 아는 이사람은 십원한장 헛으로 안쓰고 아까워서 룸싸롱 못가는 돈얘기만 나오믄 버럭하고 화부터 냈던,,

아니 어쩌면 사실을 알면서도 귀막고 눈감고 회피한걸수도 있어요

근데 사람이 사람으로써
사람의 도리는 지키고살아야지
지금껏 살아온,, 나한테 조금이라도 눈꼽만큼이라도 미안함과 고마움 우리 가족들 ,, 생각한다면
절대 해서는 안될짓,,
그냥 배신이 아니라 살인보다 더한짓

온몸이 사시나무처럼 덜덜 떨리고
눈앞이 캄캄하더군요

지금껏 2년을 넘게 곧3년이 되어가는 불륜녀의
방값과 생활비를 대주고 계약이 끝나자
같은지역으로 집을옮길까 가까이서 함께 뒹굴고 싶은 그 애틋함과 그만큼 커진 위험성을 고민하며 스릴를 즐겼던 두악마들

그전 스쳐간여자
또 그전 지나간바람 분위기에 어쩔수없이 나간 룸2차
저는 친구랑 친구결혼할 사람이랑 셋이 주구장창 모이는데 그년이 그년일줄은,,
그러면서 봤다고 말전해준 내 주변지인들은 입에도 담지못할 쌍욕을 하고
불안해하는 나를 정신과 가서 약 타먹으라 다돋여주던,,,
다 지나간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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