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앞둔 10년 전 첫사랑에게

공지사항 25.03.02
너의 결혼소식을 듣고 10년 전 일을 어디 말할 곳이 없어 부끄럽지만 여기에라도 글을 적어본다.

10년 전의 우리,
아무도 비집고 들어오지 못할 것 같던 우리의 틈 사이로
내가 기억하는 너를 흘려넣곤 했어

두 학년 후배였던 내게, 영화가 틀어진 시청각실에서 남들 몰래 잠든 내 위로 덮어주고 간 겉옷의 온기를 기억해
고등학교 였지만 과 특성 상 하늘같은 선배님들 이였는데, 내가 네 덕을 참 많이 봤지, 고맙게 생각해

네가 염원하던 대학에 붙고 우리의 500일 기념 이였던가, 동기 형님의 자취방을 빌려 어설픈 스케치북 이벤트를 해주다가 혼자 벅차 올라서 웃으며 울던 너를 기억해
나 솔직히 그때 네가 왜 울지 싶었어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어이없고 웃기고 예쁘더라

그렇게 영원같던 설레임이 있었고
깊은 밤 먼 숲 속에서 들리는 부엉이의 소리처럼
아득하고 검고 먼 이야기가 되었어

너를 처음 만났던게 벌써 11년 전이야

나는 아직도 너에 관한 것들은 많은 것을 기억해
그 당시 네가 자주 입던 형광 주황색 바람막이, 그 당시 너의 말투, 너의 전화번호를 어떻게 쉽게 외우는지 알려줬던 설명들도 기억해.

햇수로 4년 남짓한 시간의 연애 끝에,
너에게 지쳐서 떨어져 나갔던 나는
다시 사랑은 할 수 없을 것 처럼 굴었고
그 탓에 꽤 오랜 시간을 헤메였지만
여전히 길을 찾진 못한 것 같아

내가 그때와는 엄청나게 많이 변했는데도 말이야

살도 12키로가 빠졌고, 소심하던 그때와는 다르게 지금은 밝고 붙임성 있는 사람이 되었어, 성격도 조금 불 같아졌고 말이야
새로운 사람도 간간히 만나봤고, 네 생각을 자주하진 않았어
어젯밤에 뜬금없이 너의 카톡 프로필을 마주하기 전까진 말이야

나는 우리가 언젠가 한번은 다시 만날 줄 알았다?

만나서 꼭 나는 너에게 고맙다는 이야기를 하고싶었어

마음을 줄 친구가 없어 우울하던 그 시절에 간간히 좋은 기억을 남겨줘서, 자주 어두운 모습이던 나를 사랑해줘서, 덕분에 나는 이만큼 견디며 자라났고, 그 시간들을 견딜 수 있게 힘을 준 너에게, 진심을 다해 고맙다는 말을 여기에다가 라도 남겨.

지금 나는 말이야
너와 다시는 만날 일이 없어진 된 것을 알게 된
지금에서야
잃어버린 것들을 찾기위해 싸울 용기를 얻었어

내가 가진 마음 중 무엇을 버려야 할지,
또 무엇을 잃지 않으려 해야하는지
아직은 잘 모르겠어

지난 모든 기억이
전부 아무것도 아닌 것 처럼 굴어버리기엔
우리가 알고 있는 것 보다도 훨씬 더 큰
인과관계로 우리 안에 잔류 할지도 모르잖아

또 다시 실수로
나를 아프게 할 기억을 품진 않을지 두렵지만
부딛혀 봐야지

그 시절의 여름 보다 더 깊었던 마음으로
나의 밤을 꼭 되찾을게

나를 꼭 찾아낼게

고마워, 정말 고마웠어
결혼 축하해



https://youtu.be/KhaORXxRbiY?si=3ZZ8ctKuMfq1rJ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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