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20대 대학생입니다.
20살때 고향과 멀리 떨어진 지방 전문대를 갔습니다. 성적으로는 경기도권 4년제 정도는 가능했었는데 부모님이 애매한 4년제 갈 바엔 전문대에서 기술을 배우는게 낫다고 전문대를 보내셨습니다. 지방으로 보내신건 당시 제가 부모님이랑 사이가 안 좋았어서 서로 떨어져 사는게 좋을 것 같아서 그러셨다고 합니다. 이 대학을 1년정도 다니다가 이건 정말 아닌것 같아서 부모님께 말씀드리고 자퇴를 하고 수능을 한번 더 보기로 했습니다. 그때 당시 원하던 대학이 아닌 곳에 억지로 보낸 것이 미안하셨는지 그 뒤로 사수까지 지원을 해주셨고 더 이상 이 문제에 대해서 부모님 탓을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저도 부모님 속 많이 썩였구요.
삼수까지 하고도 원하는 성적이 나오지가 않았습니다. 삼수까지 말아먹고 나니, 이건 진짜 아닌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그동안 독학을 했었는데 이번만큼은 부모님께 손을 벌리더라도 제대로 해보고 싶다, 해서 재수 학원에 들어갔습니다. 재수 학원에 들어가서 하루 12시간씩 공부만 하니까 되긴 되더라고요. 사수 끝에 원하던 대학에 붙었습니다. 기쁘기도 했지만 학원만 다니면 해결될 문제였는데 뭐하러 사수까지 끌었나 싶기도 해서 좀 허무했습니다.
그런데 사수 끝에 원하던 대학에 붙었는데 전혀 행복하지 않고 오히려 더 불행한 것 같습니다.
스무살때 지방 전문대에 다니면서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타향에서 원하지도 않는 대학을 다니니 너무 힘들었습니다. 학교도 잘 안 나가고 하루종일 자취방에 누워만 있었습니다. 해뜰 때 자리에 눕고 해 질때쯤 일어났습니다. 해를 보는 시간이 하루에 한두시간 정도였습니다. 박살난 수면패턴으로 살아가면서 매일 아무것도 안 하고 핸드폰만 봤습니다. 대학에 친구도 하나도 없었고 말 그대로 히키코모리 생활을 했습니다. 오랜만에 고향에 갔더니 친구가 얼굴이 왜 그렇게 하얘졌냐고 할 정도였습니다. 밖에 안 나가니 피부가 탈 리가요. 그래서 이렇게 사는건 아닌것 같다 싶어서 재수를 결심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수 끝에 원하던 대학에 붙은 지금도 그때와 다른 것이 하나도 없는것 같습니다. 그때처럼 학교를 안 나가지는 않지만 정말 수업만 딱 나가고 나머지 시간에는 자취방에 누워서 핸드폰만 보고 있습니다. 나름 사수를 하는 동안 대학에 로망이 있었습니다. 대학에 가면 남들처럼, 인스타에 올라오던 내 친구들처럼 대학 생활을 즐기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입학하고 초반에는 학교생활에 적응해보려고 노력했습니다. 학과 행사도 나가보고 동아리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학과 행사를 나가봐도 이미 친해진 애들끼리만 뭉쳐있고 그들 사이에 끼기는 어려웠습니다. 제가 사회성이 부족하기도 했구요. 사수를 하는 동안 많이 소심해졌고 또래들의 관심사와는 너무 멀어졌습니다. 또래들이 보는 드라마나 유튜브도 잘 모르고 연예인도 잘 모릅니다. 아마 사실 이런걸 잘 알아도 의미 없을 것 같기는 합니다. 낯선 사람과 대화하는게 너무 힘이 들거든요.
입학할 당시에는 새 대학 생활에 대한 기대가 조금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달동안 그 기대가 무시만 당하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스무살때 쓴 일기를 봤는데 지금과 다른게 하나도 없더군요. 매일 누워만 있고 밤낮이 뒤바뀌고, 친구는 하나도 없고. 그동안 저는 제가 불행한 것이 제가 원하는 환경이 아니라서 그런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방 전문대에 다닐 때에는 원하던 대학이 아니라서 불행한 것이라고 생각했고, 재수, 삼수, 사수할 때에는 아직 입시중이라 불행한 것이고 원하는 대학에 가면 행복해 질 것이라고 생각하며 n수 시절을 버텼습니다.
그런데 드디어 오랜 세월 끝에 원하던 대학에 붙었고, 드디어 몇년동안 상상만 하던 행복한 시간이 왔는데도 전혀 행복하지가 않습니다. 대학 네임벨류에 따라 제 행복이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아닙니다. 그냥 남들처럼 평범한 대학 생활을 해보고 싶었던 것 뿐입니다. 저도 남들처럼 학교에 가서 강의듣고, 학교 도서관에서 공부도 하고, 친구들이랑 학식먹고, 공강날 놀러가고 그냥 그런게 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그냥 평범한 삶을 꿈꾸었을 뿐인데 저한테는 그것도 너무 과분했었던 걸까요.
부모님이 가끔 전화하셔서 학교는 재밌냐, 원하던 대학에 가니까 행복하냐고 물어보시는데 그동안 지원해 주신게 죄송해서 행복하다고는 말하지만 솔직히 전혀 행복하지가 않습니다. 스무살 이후로 행복했던 적이 단 한번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동안은 그나마 이 지긋지긋만 입시만 버티면 행복해질 거라고 생각해서 버틸만 했는데 이제는 그렇게 핑계댈 수도 없어서 더 힘이 듭니다. 대학만 가면 행복해 질 줄 알았고, 그것만 믿으면서 지난 몇년을 버텼는데 그게 아니였다니 저는 어떡해야 하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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