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여자로써 답답한 엄마

공지사항 25.06.21

15년차 전문직 직종에 근무하며 나름 탄탄한 커리어로 안정적으로 지내고 있는 여자야.

이제 곧 결혼할 사람도 생겨서 내년쯤 준비중이야.

옛날에도 우리집은 가난했어서 그거 벗어나려고 죽기살기로 열심히 공부한거라

나름의 프라이드도 있지만 갈수록 초라한 기분도 들어.

고등학교 때 기숙사 생활, 대학교 때 서울로 올라와서 직장 다니며 가족과 큰 교류는 없었어.

한 달에 한 두번 주말에 밥 먹는게 전부.

어느 날 부터 집에 가면 내가 만나는 사람들과 너무 다르니까 좀 숨이 답답한 느낌이 들어.

솔직히 결혼 할 사람의 집안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더 그런 모습이 힘들어져.

내가 돈을 많이 벌기 시작하면서부터 엄마 아빠에게 이런저런 지원을 했어.

그런데 우리 부모임은 그걸 받을 감당이 안되시는 것 같더라.

엄마가 항상 맞지도 않는 옷을 홈쇼핑에서 사입는게 싫어서 백화점 가서 옷을 여러번 사서 드렸어.

그럼 뭐해.

며칠 뒤에 보면 옷 소매에 김치 국물이며 니트류는 줄어들고 브라우스는 올아 다 나가고 빨래도 그냥 막해서 완전 헌 옷이야.

구축에서 사시는 데 인테리어 해드렸더니 일 년도 안되서 환기 잘 안해서 곰팡이 올라오고.

내가 해외출장 갈 일이 많은데 엄마와 함께 가자고 해도 돈이
아깝고 집이 좋다며 한 번을 안가신다.

오늘도 점심 사드렸는데 좋은 곳 모시고 갔더니 비싸다며 이 돈이면 집에서 맛있는거 먹는다며 궁시렁 궁시렁.

그러면서 먹는 소리는 우당탕탕. 김치는 바지에 떨어져서 손으로 들어서 다시 먹고, 자기 앞접시에 떴던 탕을 다시 탕그릇에 붓지를 않나.

솔직히 나는 상견례도 너무 걱정인거야.

내가 눈치를 잘보고 빠른편이라 고등학교, 대학교 때 기숙사 생활하며 룸메들 (다 잘사는 애들) 보고 배운게 집에서 보고 배웠던 거보다 많았어.

그래서 대학교 때 한 친구를 만났다가 집에 급하게 볼 일이 있어서 데리고 왔는데 그 친구가 나는 니가 엄청 잘 사는 줄 알았다고 (착하고 엄청 친한 친구야) 너무 놀랐다고 했어.

그때 당시 가난 하다기 보다 20평대 빌라였는데 집 안이 난장판이라고 해야하나. 가난보다 더 슬픈 비참함 같은 거였어.

티비는 바닥에 (거실장 필요없다고 생각하셨던) 소파나 침대 같은 가구는 없고 다른 잡동 사니 들이 다 나와 있었거든.

기숙사에서 나는 좋은 물건은 없어도 엄청 간소하고 깔끔하게 지냈거든. 내 공간이었으니까.

그 이후로 나는 그 어떤 사람도 우리 부모님과 집을 보여주는 걸 극도로 꺼리게 되었고 지금의 결혼할 사람도 오년 만에 엄마를 처음 보여줬는데 이해를 해주더라고.

남자친구의 집 안은 부모님 다 커리어도 좋으시고 재력도 있으시고 무엇보다 교양과 우아함이 있는데 나는 그게 너무 부럽더라. 내 직장 이야기, 여행 이야기, 심지어 정치 이야기를 해도 너무 부드럽게 대화라 되니까 좋으면서 내가 자꾸 초라해져.

그리고 내가 곁눈질로 배운 것과 다르게 그들에게는 여유가 있는 게 가장 부럽더라. 남자친구에게 누나가 있는데 성품도 좋고 태도나 행동에서 당당함이 있고 특히 여자로써 엄마와 하는 대화들이… 너무 부러워서 미칠 지경이더라.


차라리 우리 부모님이 정말 깡촌 시골분들이었으면. 화통한 시골 부모님이었다면 나았을꺼야. 항상 도시의 변두리를 전전긍긍하며, 한 탕을 노리던 번듯한 직장 없이 살던 아버지. 어떻게든 일을 꾸려가며 여자로 아내로 엄마로 모든 걸 다 내려놨던 어머니.

머리로는 너무나 이해가 되는데 그런데도 현실이 너무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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