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빛

공지사항 25.06.24
물빛은 단지 물이 빛을 머금은 것이 아니라, 그날의 하늘과 공기, 바람과 시간, 그리고 바라보는 이의 마음까지 함께 비추는 감정의 색이다.

맑은 날, 햇빛 아래에서의 물빛은 투명하다. 수면 위로 반사된 햇살은 깃털처럼 흩어져 흔들리고, 그 아래로는 고요한 푸름이 깊이를 감춘 채 머문다. 때로는 녹빛을 띠고, 때로는 은빛으로 반짝이며, 그날의 공기와 하늘의 색을 고스란히 품는다. 물은 하늘을 담고 있지만, 하늘보다도 더 감정적이다.

비가 올 듯 말 듯한 흐린 날의 물빛은 조용하고 은근하다. 회색과 푸른빛 사이를 오가며, 마치 말없이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처럼 잔잔하다. 세상이 물기를 머금고 있을 때, 물빛은 세상의 감정을 고스란히 감싸 안은 듯이 부드럽다.

물빛은 풍경을 비추는 거울이면서, 동시에 마음의 창이 되기도 한다. 우리가 슬플 때 물은 더 깊어 보이고, 기쁠 때는 더 반짝인다. 물빛을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어느새 자신의 내면과 마주하게 된다. 그것이 물빛의 마법이다. 세상 어떤 것보다 솔직하고 정직하게, 오늘의 나를 비추어주는 빛.

물빛은 시간의 흐름을 담은 색이다. 아침엔 연하고 투명하며, 낮엔 찬란하고 생동하고, 해질녘엔 금빛과 주홍빛을 머금는다. 그리고 밤이 되면, 물빛은 어둠을 깊이 끌어안은 채 별빛을 받는다. 그 깊은 색조 안에서 우리는 그리움을 보고, 추억을 건지고, 잠시 세상의 소란에서 물러나 안식을 얻는다.

물빛은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니다. 그것은 마음의 조율이며, 침묵 속에서 울리는 감정의 멜로디다. 물빛을 사랑하는 사람은 결국, 말보다 더 섬세한 빛의 언어를 이해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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