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의지

공지사항 25.08.11
안녕하세요
작년에 이곳에 제 얘기를 썼던 고등학생입니다
그때도 글이 길었는데 이번에도 그럴 것 같습니다
읽기 힘드신 분들은 그냥 뒤로 가셔도 됩니다

지금 저는 고3입니다
작년에는 조금만 더 버텨보자고 스스로를 속였는데
1년이 지난 지금 제 하루는 그 말이 얼마나 헛된 거였는지 증명하고 있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은 좀 나을까’가 아니라
‘오늘은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부터 생각합니다
밤이 되면 하루를 견딘 게 아니라
하루에 질질 끌려다니다가 겨우 살아남았을 뿐입니다
죽고 싶다는 생각은 예전보다 더 깊고 더 자주 듭니다
숨 쉬는 것처럼 당연하고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습니다
살아야 할 이유는 아무리 찾아도 없습니다
없는데 이상하게 죽을 용기도 없습니다
자해충동도 잦아졌습니다
손끝이 간질거립니다
머릿속에는 제가 자해든 자살이든 충동적으로 행동하는 장면이 아주 선명하게 그려집니다
그게 무섭거나 그렇진 않습니다
그냥 좀 웃길뿐입니다
차라리 그렇게 끝내는 게 맞는 그림 같다는 생각이 더 큽니다

요즘은 현실과 꿈의 경계가 완전히 흐려졌습니다
깨어있는 건지
아직 꿈 속인지
구분이 안 됩니다
친구와 대화하다가도 불쑥
“이 말 내가 전에 한 적 있어?”
“너 이렇게 한 적 있어?”
이렇게 습관처럼 확인합니다
친구는 “아니 처음 하는 말인데”라고 하지만
저는 끝까지 확신이 없습니다
만나고 있는 사람
먹고 있는 밥
듣고 있는 수업
전부 진짜인지 끝까지 확신이 서질 않습니다
그리고 기억력도 서서히 안 좋아지고 있는 게
슬슬 체감됩니다

작년에 썼던 글에서 한 번 얘기했던 공황에 대해 얘기해보자면
그때는 지하철역에서 한 번 겪고 지나갔지만
이제는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길 한가운데서도
잊을만하면 발작 증세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그때랑 비슷한 상황이 올라옵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숨이 턱 막히고
머리는 깨질 것 같고
극심한 구토감에 헛구역질을 반복하고
귀에선 찌르는 듯 이명이 들려오고
먹먹하고 웅웅거리는 소리에 귀뿐만 아니라 뇌 속까지 답답한 안개가 차올라
지금 당장 나에게 다가오고 있는 죽음을 제외하곤 아무 생각도 들지 않습니다
그러다 주변 소리가 멀어지는 순간에는 ‘아 이번엔 정말 쓰러지겠다’는 생각밖에 안 듭니다
어떻게든 억지로 참고 숨을 고르고 골라
다시 정상으로 돌아와도
머릿속은 이미 그 불안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다음에 또 이런 상황이 올까 봐
계속 긴장 상태로 살아갑니다

얼마 전엔 친구와 진지하게 얘기하다가
제가 죽음을 처음 생각한 게 사실은 중고등학교 때가 아니라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는 걸 떠올렸습니다
자살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했던 때는 초등학교 6학년이었고요
아무 생각 없이 그 말을 꺼낸 순간부터
이 말을 이 친구가 어떻게 받아들일까
그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 찼습니다
제가 무슨 표정을 짓고 있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습니다

표정
공기
전부 따로 놀다가 부서진 것만 같습니다
그러다 그런 제 모습이 갑자기 웃겨졌습니다

저를 숨기기 위해 쓰던 가면은
예전에는 ‘이것보다 더 익숙해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는데
이제는 익숙해지는 걸 넘어서 그 가면이 제 얼굴이 됐습니다
오래 쓰다 보니
안에 있던 나라는 사람이 완전히 지워졌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제가 누구였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미래는 여전히 보이지 않습니다
아버지가 “네가 하는 만큼 받는 거야 나는 네가 딱 하는 만큼만 도와줄 거야”라는 말을
너무 자주 해서
그게 그림자처럼
또 꼬리표처럼 붙어다닙니다
그 말이 제 존재 가치를 숫자로 잘라버리는 것 같습니다

원래 저는 속 얘기를 잘 안 하는 사람입니다
아무리 속이 썩어도 친구들의 고민을 듣기만 하는 입장이었죠
그런데 이제는 정말 힘들어서 한 번 털어놔보자 했는데
그럴 사람이 없었습니다
입을 열어보려고 하니
받아줄 사람도
들어줄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게 더 허무했습니다
숨이 막혔습니다

학교에서는 매일매일 시간을 버리고 있습니다
시계만 보고
폰만 만지작거리고
멍하니 창밖만 보다가 눈이 무거워져서 자고
다시 깨도 똑같습니다
공부를 안 하면 불안한데
하자니 머리가 돌지를 않습니다
결국 ‘아 난 그냥 안 되는 사람이구나’라는 결론만 남습니다
그리고 그 결론을 깨부술 힘도 다시 시도할 힘도 없습니다

이렇게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저를 보면
마치 제가 제 발로 수렁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발버둥칠 힘도 없이
그냥 가라앉게 내버려두는 겁니다
편하지도 않은데
그렇다고 빠져나올 의지도 없습니다

답은 없습니다
살 이유도
버틸 이유도
목표도 없습니다
또 이 글을 쓴다고 달라질 건 없습니다
누군가 저를 구해줄 거라는 기대도 없습니다
그냥 더는 삼키기 힘들어서 여기다 토하는 겁니다

오늘도 정말 정말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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