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돌아가신지 16년이 지났는데 요즘 그냥 눈물이 나요

공지사항 25.08.23
16살때 아빠가 돌아가셨어요
사업 한다고 해외에 나갔다가 조선족 여자랑 살림을 차렸죠
표면적인 명분은 우리 집에 돈을 몇억을 주는 대가로
그 여자 한국 시민권을 얻어주는 거였지만,
급성 간염으로 쓰러지고 조선족 여자가 우리집에 전화를 했어요
그 전화는 제가 받았어요
아직도 그 공기가 생생하게 기억이 납니다
중간고사를 준비하던 그 때, 갑자기 공기를 날카롭게 찢으면서 울리는 벨소리
그게 아직도 생생해요 조선족 말투로 말하는 여자 목소리를 듣는 순간 뭔가 본능적으로 잘못 됐다 생각하고 엄마에게 넘겨줬어요
그러고 아빠는 귀국하고 귀국한지 한달만에 돌아가셨어요
엄마가 사정사정해서 돌아와서 치료받으라고
치료받으면 조선족 여자에게 보내주겠다던게 기억이 납니다
안오겠다던 아빠를 설득해보겠다고 바레인으로 떠나는 엄마한테 아빠가 차라리 죽어서 안돌아오는게 낫겠다고 울면서 소리쳤던게 기억이 나요

돌아와서 시커매지고 부풀은 배로
저랑 제 동생 주겠다고 사온 하얗고 퍽퍽하고 부드럽고 이상한 향료맛이 나던 과자맛이 아직도 기억이 나요

원망하면서도 아빠의 기분을 생각해 그 맛없던 과자를 한통 꾸역꾸역 비웠던게 생생합니다
어쨌든 귀국하고 한달사이에 상태가 나빠져서
돌아가셨어요 정신도 오락가락하셨는데 지금은 기억이 희미해져서 기억나진 않지만 아빠가 아이스크림을 사들고 퇴근할때마다 제가 하던 말이 있었습니다
제가 아산병원에 입원해있던 아빠에게 그 단어를 내뱉을때마다 눈빛이 돌아오면서 저를 반짝 기억하던게 기억이 나요

좋았던 시절에 항상 퇴근길 아이스크림을 사들고 오던 아빠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해요
그래서 괴리감이 생겼던걸까요 아빠같은 남자랑 결혼해야지 라고 달고 살던 어린날의 저는 아빠같은 사람은 절대 만나지 않겠다로 바뀌었어요
아무튼..

그리고 하나 제가 생각해도 사이코패스같다고 느꼈던게
엄마가 집을 비우고 아무도 집에 없던 그 한달동안
저랑 동생은 좋다고 크레이지아케이드를 하루종일 했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일주일에 2시간만 컴퓨터를 할 수 있었거든요
아빠가 돌아가시던 전 날 까지도 저는 컴퓨터 게임을 했어요
장례식장에서도 입관하는 모습을 볼때도 크게 실감이 나지 않았어요
다들 저보고 엄마 잘 챙겨라 하던 소리만 기억이 나네요
관을 파묻을때도 엄마가 오열하며 쓰러질때도
내가 여기서 울면 다같이 무너지는거란 생각에 울음을 참았던 기억이 나요

그렇다고 착한 딸은 아니었어요
국영수사과 전교1등이라서 고등학교 가서도 걱정없을거라는 기대를 받던 저는
전학간 학교에서(서울에서 경기도 ㅇㅇ읍) 적응을 하지 못했고
고등학교도 가지 않았습니다
6개월 대충 책 한번 들여다보고 검정고시를 통과했고
수능도 대충 준비해서 남들보다 1년 빠르게 지방 국립 공대를 갔어요
그때 음식을 배가 터질때까지 밀어넣고
토하고 먹고 토하고 먹고 토하고
발바닥 살 부분도 다 뜯어서 피가 나고
아물면 또 뜯고 피나고 또 뜯고

그런 시기었기에 그냥 아무데나 대학을 갔던 것 같아요
대학교 가서도 열심히 놀았어요
매일같이 술을 먹었고 술을 먹고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는 항상 울었고 자다가도 울었고 집에 혼자 있으면 울었고

그때당시 만나던 남자친구에게는 아직도 미안함과 고마운 감정이 있습니다 그 분이 아니었다면 그 시기를 잘 견딜수 있었을런지 …

대학교 졸업해서도 취업할 생각이 안 들었어요
그냥 이렇게 살다가 죽어도 그만 살아도 그만
엄마한테 미안하고
나는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생각도 하고
공부한다는 핑계로 아무것도 안하고 집에서 누워만 있고
사람도 만나지 않았어요
한 4년을 그렇게 허비한거같아요

그것도 아마 비빌 언덕이 있어서 그랬던거겠죠
엄마는 전업주부였다가 자영업을 시작하면서 잘 벌땐 1000만원도 벌고 그랬어요

그러다가 28살쯤 되어서 뭐라도 해야겠다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29살때 중소기업에 첫취직을 했습니다
하고 나니까 인생이 더 허무하더라고요
재미가 없었어요
남들 다 이렇게 사는건가? 싶기도 하고 무슨 재미를 붙이며 살아야 하나 싶기도 하고
그냥 왜 살아야하는지 모르겠는데
엄마때문에 죽지도 못하겠는 그런 상태였던거같아요

220받으며 그냥 버는거 다 쓰면서 그냥 살다가
그때쯤 친구랑 미친듯이 놀기 시작했어요
새벽까지 술 먹고, 첫차타고 들어오고..
그짓을 한 2년했던거같아요

엄마도 딱히 뭐라고 안하고 그냥 절 내버려두거나
가끔 절 데리러 오시기도 했는데
그때 왜 그랬냐고 물어보니 그렇게라도 내가 술 먹고 풀고 다녀야 살아있을거같다고 했어요
집에 돌아오면 내가 없어져있을거같다고..

그러고 몇번의 이직을 거쳐서
32살인 지금은 그래도 삼백중반대의 월급을 받으며
밥벌이를 하고 있는데

요즘은 그냥 이유없이 눈물이 나서 미치겠어요
이 글을 쓰는 이유도 그거에요

난 지금 우울하지도 않고
아빠 생각도 딱히 나지도 않는데
요즘들어서 또다시 재미가 없고
그렇다고 우울하지도 않는데 눈물이 납니다
제가 왜 우는지도 모르겠는데 그냥 혼자있으면 눈물이 나요

올해 어버이날 문득
아빠 산소를 가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10년만에 동생이랑 찾아가서 꽃다발을 두고 오긴 했어요
저도 왜 갑자기 가고 싶어졌는지는 모르겠는데..그렇다고 그립지는 않은거같아요

근데 길거리에 제 또래 여성들이 아빠랑 다니거나
회사에서 딸바보인 부장님들 보면 부럽기도 하고 그렇긴 한 거 같아요

16년이 지난 지금 아빠가 그립지도 않은데
왜자꾸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어요
지금 삶이 그렇게 힘든 것도 아니고
이제 뭔가 좀 해볼 의지도 생기고 그런데
왜 자꾸 눈물이 나는진 모르겠어요

글이라도 쓰면 생각정리가 될까 싶어 써봤는데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밤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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