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스톡홀름 증후근 같아요

공지사항 25.09.28
저희 어머니 제겐 정말 좋은 어머니셨고, 진짜 사랑하고 존경해요. 근데, 최근들어 어머니랑 같이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엄마가 조금 이상하게 느껴져요. 스톡홀름 증후군처럼요.

어머니는 꽤 유복한 집에서 귀하게 자라셨다고 들었어요. 근데, 결혼 후에 시부님을 정말 잘못 만났어요. 엄마의 시모는 (편의상 친할머니랴 적을게요) 제게 친할머니로써는 좋은 분이었지만, 좋은 시부모는 절대 아니였어요. 그분 자체가 외진 시골에서 어렵게 사시긴 했어요. 근데 그 책임은 솔직히 말하자면 무관심하고 가부장적인 친할아버지 탓이었지, 엄마의 문제는 아니였어요. 그런데도 친할머니는 그렇게도 엄마를 못 살게 굴었어요. 어렸을 때는 저도 어렴풋이만 느꼈던 건데, 지금은 더욱 확실히 그렇게 느껴지더라고요. 결혼 초에는 엄마가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요리 안했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치셨고 (그뒤론 엄마는 친가 갈때는 늘 새벽에 일어나셨어요) 명절 때도 아빠가 부엌일을 하려 하면 쫓아내고 엄마를 진짜 강도높게 부려먹으셨어요. 명절 끝나면 엄마가 한동안 앓아누울 정도로요. 추운 겨울에 엄마가 추위를 많이 타셔서 아빠긴 본인 외투를 벗어주면 재수없다고 역정을 내셨고, 엄마가 그 집에서 안 쓰는 아빠 조끼를 종종 입으니깐 아예 그 옷을 몰래 버려버리셨고요. 엄마가 여름철에 반바지 입는것도 (딱 평범한 기장인데) 차림이 그게 뭐냐고 못마땅해 하셨고, 심지어 일회용 비닐을 여러번 빨아서 쓰지 않는다고도 못마땅해 하셨어요. 또, 본인 인생이 잘 안 풀리신 것에 대한 울분을 종종 엄마를 붙잡고 토해내셨어요, 그 원인인 할아버지께는 아무말도 못하시면서요.

저희 친할머니는 이런 분이셨어요, 건캉하실 때까지는요. 지금은 연세도 많이 드셔서 편찮으시고 거동도 불편하셔요. 엄마는 종종 할머니 댁에 설치된 cctv를 확인하면서 할머니가 어떻게 지내는지 지켜보시고, 할머니께 무엇이 더 필요할지 전전긍긍하셔요. 정작 할머니 자식들인 고모들은 할머니를 오히려 짐으로 여기고 서로 떠넘기는데도요.

솔직히 말하자면 저는 엄마가 이런 취급을 받았으면서도 왜 그토록 할머니를 위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늘 엄마한테 이 얘기를 꺼내보면 '옛날 분이니 어쩔 수 없다', '그렇다고 내가 할머니와 연을 끊으면 아빠를 불헁하게 할 텐데, 그건 못할 짓이다'면서 저를 나무라세요. 오히려 이런것도 참지 않고 손해보려 하는 제가 너무 이기적이라고요. 자신을 괴롭혔던 할머니를 이렇게 지극정성으로 챙기는 엄마도, 건강할땐 엄마를 한껏 괴롭히다 정작 늙고 병들었을 땐 당연하다는 듯이 엄마에게 기대는 할머니도 너무 이상하게 느껴져요.

여기서 더 이상한 점은 엄마가 이런 자신의 모습에 묘하게 자부심을 가지신단 점이에요. 그리고, 오히려 이런 할머니의 모습을 합리화하며 '원래 며느리는 너무 잘 대해주면 안 된다'고 하시더라고요. 결국은 그렇기에 할머니에게 자신이 이런 취급을 당한 건 그럴수 밖에 없는 거라고 합리화하는 것처럼도 들려요. 게다가 이런 시집살이를 겪지 않은 외숙모를 질투하시는 것 같아 보여요. 외할머니는 며느리인 외숙모를 정말 잘 대해주시고, 오히려 더 챙겨주려 노력하거든요. 엄마는 이런 외숙모를 정말 못마땅해 하면서 '며느리를 너무 잘해주면 시부모를 우습게 안다', '외숙모는 너무 눈치를 안 본다'며 기분 나빠하시더라고요.

아무리 샤랑하는 어머니라지만, 이런 어머니의 모습들은 이해하기가 힘들어요. 마음 따뜻한 외숙모가 외할머니께 잘 대우받는 걸 보기싫어 하실때는 솔직히 어머니가 좀 못나보였고요.

어머니는 대체 왜 이렇게 행동하시는 걸까요? 아직 제가 어머니 또래가 아니여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솔직히 이런 어머니가 너무 답답해요.
  • 이전글
  • 다음글

댓글쓰기

0/200자

(댓글은 자신을 나타내는 얼굴입니다. 비방 및 악성댓글을 삼가해 주시기 바랍니다.)
자동방지 코드 2951

커뮤니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