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하얀양말

공지사항 25.10.27

 내 이야기를 시작해보지  그러고보니 어느덧 까마득한 옛날  요즘 이야기는 확실히 아니고  어느덧 까마득한 옛날...50년이 다 되어가는  1970년대 후반의 일이로군   그 시절...  그 이야기는 다들 한두번 들어봤을게야  그 시절엔 특히 시골에서 올라와  서울에서 그런대로 먹고살만한 집에서  가정부나 파출부로 일하는 어린여자  많던 시절이란 것 정도는   그 시절 우리집도  확실히 가난한집은 아니었고  아버지가 대기업에 다니시는  그런대로 먹고살만한 중산층 가정이었지  다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어머니는  나 어릴때부터 안 보이기 시작했고  그래서 가끔은 먼 친척 아주머니들이 교대로 들러서  내 밥을 챙겨주시고 아버지 사는거 챙겨드리고  그러던 시절이었어  아무리 그래도 파출부나 가정부 들이기엔  좀 빠듯한 살림이라 생각했는지  굳이 그런 파출부나 가정부는 들이지않고  대산 그렇게 친척 아주머니들이  돌아가면서 우리집 살림하는거 봐주시던  그런 시절이었어   사실 친척 아주머니들이...  대개 나한테 굳이 촌수로 따지면  이모나 고모뻘되는 그런이들이었는데  그래서 그런식으로 부르는게 익숙해져서인지  실제 집에 가정부가 생긴뒤에도 한참은  가정부누나한테 이모라 부르기도 헀었지   근데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어머니가 안계시니 당연히 외가 친척인  ‘이모’는 없는게 정상인데...  그럼에도 그렇게 부른걸보면  일단 아버지가...친척 아주머니를 ‘이모’라 불렀고  어린 내가 따라서 이모라 부른걸보면  나한테 이모가 아니라 – 그러니 굳이 내게 따지면  이모할머니뻘 ? - 아버지한테 이머인  그런 먼 친척 아주머니가 이따금  가정부내지 파출부를 대신해  우리집 살림하시는걸 도와주셨던 것 같다   근데 그게 좀 한계가 있었는지  그러다 언제부터인가 아버지가 집에  진짜 가정부누나를 들이셨던거야  고향은 아마 대충 충청도 어디에서  무작정 상경한 그런 여자라고 들었는데  여하튼 난 이미 그때 이전에 친척아줌마가  우리집 살림 봐주고 나 밥해주고 할 때  이모가 부르던 호칭이 이미 익숙해 있어서인지  새로 들어온 젊은 가정부누나에게도  그냥 ‘이모’라고 불렀었다...   그런 이야긴 한두번쯤 들어봤겠지 ?  그 시절 서울의 잘사는 동네 아파트에는  파출부나 가정부 아주머니가 머무는  여분의 방이 하나쯤 더 있었다는 것을  우리집의 구조도 마찬가지라서  다만 우리집은 나 외에 다른 형제가 없었기 때문에  네 개의 방중 하나는 아버지가 쓰는방  또 하나는 내가쓰는방  그 외에 여분의 빈방이 두 개가 있었던셈인데  사실 내가 아주 어릴때부터 이 집에 살았던 것은 아니고  아마 국민 학교 들어갈 무렵부터  그 당시 새로생긴 아파트단지에  입주해 들어간것인데    그 뒤로 한동안은 여분의 방은  친척어른이나 또 이따금 우리집 살림봐주는  친척 이모나 아무저니가 오셨을 때  쓰는 방이되었고  정식으로 가정부 누나가 들어온뒤로는  그 누나가 쓰는 방이 되긴 했는데  - 그러고보니 가정부 누나에 대한 호칭이  내가 이모라고 했다가 누나라고 gOTek가  좀 일관되지 못하긴 했다   다만 그 이전까지는 친척어른들이 종종 오셨을 때  주무시고 가는 방이기도 했기 때문에  가정부 이모가 들어온뒤로는 아무래도  가정부 이모가 주인아저씨네 친척어른과  한방에서 자긴 좀 민망했는지...  알아서 눈치껏 자신이 나와서 거실이나 부엌에  대충 이불 깔고 자기도 했다  그러다...  내가 그렇게 자는 가정부 이모가 안쓰러웠는지  내 방에 들어와 같이 자는게 어떻겠느냐고  말하기도 했다  그때가 내가 어느덧 중학교 졸업하고  고등학교 들어갈 무렵  그런대로 철이 들었다면 들었을수도  있는 나이긴 하지만  다만 어느덧 사춘기 고등학생으로 성장해가는 내가  20대 초반의 가정부 이모와 한 방에서 자는게  좀 모양새가 거시기하긴 했지...  다만 가정부 이모는 그래도 시골출신이라  순진한건지 멍청한건지  나의 그런 제안에  순순히 응하곤 했다   가정부 이모가 우리집에서 지낸게  그러고보니 대략 3년 남잣인데  그 시간이 사실 순탄하진 않았어  이런저런 사정이나 문제가 좀 있어서  가정부 이모가 고향으로 내려간적이  정확히 세 번 있었어  그러다 두 번은 아버지가 직접 고향까지 내려가  이모를 설득해 데리고오기도 했고  한번은 아버지 친구 두분이 대신 내려가서  데리고 오기도 했는데   그런 소동이 좀 있고나서 가끔  아버지와 아버지 친구분들이 그분들끼리 술한잔 하시며  나누는 대화가 좀 있었어  아버지 친구분들이 아버지를  되려 이렇게 설득하시더군  ‘그러지말고 OO이(* 가정부 이모 이름)랑  결혼하는게 어떻껬느냐 ?’   글쎄...  그 시절에...가정부 이모나 누나가  집주인 아저씨와 눈맞는 사례가  흔했었는지까진 나도 잘 모르겠다  - 다만 대충 그런 내용의 드라마가  하나 있었던걸로는 어렴풋이 기억나는데  여하튼...젊어서 이혼하고 혼자서  나 키우면서 고생하신 아버지  그만 고생하고 아이를 위해서라도  가정부 이모랑 재혼하는게 어떻겠느냐  그런식의 설왕설래가  대략 그 무렵부터 오간 것 같았다   아빠와 가정부 이모의 결혼  그때의 내 솔직한 심정은...글세  일단...  싨다-좋다의 이분법으로 단순히  대답하긴 쉽지 않을 것 같다  일단 그때 내 나이 고등학생  무엇보다 엄마도 없이 혼자 나 키우느라 고생하신  아버지를 생각해서라도  아버지의 재혼을...어느정도는 이해해드릴수 있는  그런 나이이기도 하고...   더 솔직히는...  이런 표현 어떻게 들릴지 모르곘지만  솔직히...가정부 이모는  내가 먼저(?) 좋아...했다...  글쎄 뭐...여기서 좋아한다는 의미가  흔히 생각할수 있는 그런 의미라기보단  그저 단순한 호감 정도의 느낌이랄까  일단 가정부 이모는 처음부터 나와  그런대로 성격은 잘 맞는편이었고  그러다보니 내가 가끔 약간 가벼운 장난을  치기도 했는데  가정부 이모는 나의 그런 사소한 장난  그리 싫지는 않은 듯 받아주었다   사실 이따금 친척어른이 우리집에서 주무셔서  여분의 방을 쓰는 바람에  가정부 이모가 잘방이 마땅치 않아서  적당히 눈치보면서 거실이나 부엌에  자리깔꼬 잠들려할 때  그게 좀 안쓰러운 느낌이 들어서   ‘그냥 제 방에서 주무세요...’ 하고  흔쾌히 내 방을 내어준것도  그런 심리가 어느정도는  작용한것이라고 할까  가정부 이모 입장에서도  아무리 그래도 주인아저씨 방인 안방에서  잔다는건...더더욱 말도 안되는 소리고  상대적으로 아직 고등학생이고 다섯 살 어린  난 그런대로 만만하게 보았던것일까   내 방에 들어와서 내가 이불을 펴주니까  별다른 거리낌이나 망설임없이 누워서  하루의 피곤을 풀려는 가정부이모  (* 게다가 친척어른까지 오셔서 머무시는때니  그분까지 챙겨드리느라 신경쓸일은 더 많았을테니)  이뻤다...혹은 귀여웠다...는 식의 표헌은  좀 어폐(語弊)가 있다고 해야하나...  여하튼 그때 나이 아직 20대 초반의  내 방에서 잠든 가정부 이모의 느낌 자체가  그랬다는것이고...  글쎄...요즘은 이런일도 큰일날 짓일지 모르곘지만  솔직히 그렇게 세상모르고 쿨쿨잠든 가정부 이모  볼에다 살짝 입맞춤도 해보고  살짝 손도 잡아보았다    요즘 잣대로는 어찌 보일지 몰라도  그 시절의 고등학생 소년인 나는  그저...그 순간의 감정에 충실했다고나 할까  그냥...  가정부이모가 좋아서 그럤다는 말 외에  더 달리 표현할 방도가 없을 것 같네 ?   여하튼 시간이 흘러  아빠는 가정부 이모와의 재혼을 결심했고  그렇게 가정부 이모는  새엄마가 되었다  아빠와 가정부이모...아니 새엄마의 결혼식날  화사한 웨딩드레스 차림의 새엄마는  집에서 늘 보던 허름하고 촌스러워 보이는 옷차림새의  그 가정부 이모와는  확실히 다른 느낌이었다    기념사진도 찍었다  아빠하고는 부부가 되는거니 당연한거고  나도 어쨌든 이제 아들로...한 식구가 되어 지내야하는것이니  그렇게 새엄마가 된 가정부 이모랑  함께 사진도 찍었다는 것이다  수줍어하던 가정부 이모는 그래도  결혼식날이고...  그리고 이제 내가 아들이라는 생각을 하니  좀 만만하게 보았던건지  오늘따라선 오히려 새엄마가 날  한번 안아주었다...    사실 그 시절은  지금과 같은 그 무슨 페티쉬 어쩌구...  그런 개념이 생기고 심지어 그런걸  공개적으로 이야기하고 할 수 있는 그런 분위기는  대략 그때로부터 30년 이상이 지난  한참뒤의 일이고  그때는 그런거 없이  나 개인적으로 그냥 남 모르는 고민이 생겼다  새엄마...아니 그 이전  가정부 이모때부터...새엄마의 하얀양말에  눈길이 갔던 것이다   뭐 그 시절은  가정부 누나뿐만 아니라 일반 직장인이나   이런 여자들도  하얀양말 신고 다니는건 흔하긴 했던때인데  하필...그중에서도 새엄마...아니 아직  가정부이모일때부터  흰양말에 자꾸 눈길이 갔던 나...  사실 그 느낌 역시  뭐라고 한두마디 단어로 표현하기 힘든  그런 성질의 것이긴 하다  가령 뭐...이쁘다느니 섹시하다느니  혹은 매력적이라느니  그런 단순한 표현방식으로 간단하게  표현할 수 있는 성질의것은 아니긴 한데  가정부 이모의 흰 양말에 자꾸만 눈길이 가면서  그런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다   사실 일부러라도 오히려 더  그래서 새엄마의 양말에 눈길이 가는건  외면하려고도 했는데...  결과적으로 쉽지 않았고  앞에서도 잠시 말했지만...  가정부 이모일 때...가끔 친척어른이 오셔서 주무시면  - 근데 사실 그런일 자체가 자주 있는건 아니다  뭐 솔직히...무슨 집이 큰집이거나 그런 경우가 아닌다음엔  집에 그렇게 친척들이 자주 방문해서  그것도 하루 자고가는일이 뭐 얼마나 될까  그러고보면 전체적으로 굳이 통계를 내보면  1년에 한 두세번 많아야 한 다섯차례  그 이상 넘긴적은 없었고  새엄마가 가정부 이모이던 3년동안 그런일은  총 열다섯차례는 확실히 넘지 않았던 것 같다   물론...  아버지와 결혼해서 새엄마가 된 이후로는  당연히 새엄마는 아버지와 함께 잤고  솔직히 묘한 상실감이 들었다...  새엄마의 흰 양말을  그래도 가장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는 기회가  그때만한 기회도 없었는데  물론 잘때야 당연히 양말은 벗고 자지만  - 무슨 신체적으로 특별한 사정이나 이유가 있는 사람이 아니고는  잘적에 양말을 신고 자는 사람은 없지 ^^;;  어쨌든 그렇게...  내 방에 들어와서 잠을 청하면서 하얀양말을 벗는  가정부 이모의 모습  눈길이 갔었다  그리고 가정부 이모가 잠들면 벗어던진 흰양말을  쓸데없이 만져보고  그리고 가정무 이모의 발도  살짝살짝 만져보기도 했다   하루는 다소 도발적인 행동을 했다  가정부 이모의 발을 내가  씻겨주고 싶다고 했지  이런일이...요즘은 어떨지 몰라도 그 시절엔  솔직히 흔치 않던 시절이긴 한데  - 헌데 그 시절에도 멜로 드라마 같은데서  연인간에...특히 남자가 여자발 씻겨주는 장면은  그 시절에도 이따금 있긴 했다  그런걸보면...남자가 여자발 씻겨주는 장면이  그 시절에도 로맨틱한 느낌이 들기는  했다는 이야기다  적어도 드라마에서 그런 장면을 연출해내는  피디나 대본을 쓰는 작가는  그런걸 염두에 두고 그런 작품이나  연출을 했을 것 아닌가   가정부이모는  발을 씻겨주겠다는 내 갑작스러운 제안에  처음엔 좀 당황하는 느낌이었지만  순순히 응했다  나는 참으로 정성스로운 손놀림으로  가정부 이모의 발을 씻겨주었다  비누칠도 해주고  나중에 다시 깨끗한 물로 닦아주고  다시 마른수건을 가져와  가정부 이모의 발을  정성스레 닦아주고  가정부 이모가 새엄마가 된 뒤에도  한참을 그렇게 헀었다   솔직히...  많은 정신적 혼란을 느끼던 시간이었다  사실 요즘처럼  성희롱이나 성추행의 기준이 그렇게 엄격하진 않던  대략 70년대 후반 – 80년대 초반까지의  일들이지만  그래서 그때...  가정부 이모...아...아니 새엄마와 있었던 일들을  여기 일일이 다 공개하는것조차  적절한지 여부가 판단이 안 설 정도로  지금 또다시 혼란스러워지는 시간이긴 하지만    여하튼 난 그때  새엄마의 하얀양말이 좋았고  새엄마의 하얀발이 좋았다  새엄마의 하얀발은...  마치...하얀 생선살 같은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그런 새엄마의 하얀양말을  그리고 새엄마의 발을  가끔씩 만져보기도 하고 주물러보기도 하고  그리고 발을 씻겨주기도 하고  그러면서 지내는 시간이 좋았다.  다행히 새엄마도  적어도 내가 지금까지 자신을  호의로 대하고 있음을 알기때문인지  나의 그런 행동을 별다른 거부감없이  받아주고 있었다는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그리고 내 나이 어느덧 17세...  고등학교 2학년  아직 사춘기 청소년이고 미성년자이지만  육체적으로는 어느덧 성인이나 다름없는 몸  사실 키가 난 또래 학생중에는 대체로 중간키 정도에 속했고  뚱뚱한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가끔 연세드신 할머니나 할아버지들은  ‘젊은친구가 듬직해보여 좋다’는 말씀을 하실정도로  그런대로 체구는 좋은편이었다  시골에서 올라온 호리호리한 체구의 새엄마보다는  당연히 내 덩치가 좋을 수밖에 없지  그렇게  새엄마와 나의 관계(?)가  지속되고 있었다   하루는...  한밤중에 방에서 혼자 곤히 잠들어있돈  새엄마의 두 발에  새엄마의 상징과도 같은 하얀양말을  직접 몰래 신겨드리고  그리고 그 두 발을 안고  기도를...드렸다....   사실 나나 아버지는 물론  새엄마도 무슨 종교나 신앙 이런것과는  비교적 거리가 있는 그런 시간을  보내온 사람이긴 했는데  나 역시도 그때까지는 신이나 종교문제 같은거  별 관심도 없고 고민도 안해보았지만  사실 그 순간만큼은  기도하고 싶었다  만약 저 하늘 어딘가에 정말로  이 세상을 창조한 절대자가 존재한다면  설사 내가 간구하는 내용이 적절하든 적절치 못하든  한번만 좀 들어주었으면 좋겠다...하고...  차라리 이대로 평생동안  새엄마의 작고 하얀발을 만지며  평생을 살아가게 해줄수는 없겠느냐고  무슨 내 주제에 크게 돈벌거나 출세하는거 바라지 않고  무슨 탤런트나 미스코리아 뺨치게 이쁜 여자랑  결혼하는것도 원치 않으니  그저 이 시간만 영원히 함께할수 있게  이어지게 해달라는 기도를 했다  새엄마의 하얀양말...새엄마의 하얀발을  평생동안 만지작거리다 살다가게 해달라는  어차피 짧은 인생  그렇게 살다 가고싶다며  나름 절실한 간구를 드렸다  그 깊은 밤중에  새엄마의 하얀양말을 부둥켜안은채......   시간이 좀 흘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생이 되었지  대학은 경영학과에 들어갔고  군대는...  실은 그 시절에 2대독자는 면제라서  가지 않았다  다만 나는 다른 형제없아 달랑 나혼자지만  아버지는 무녀독남 외동인건 아니고  위로 누나만 넷인 막내인데  어쨌든 독자(獨子)는 아들로만 쳐서 계산하는거라  어쨌든...2대독자로 면제였다는 소리지    그렇게 어느덧 성인이 되어있는 나  한번은  새엄마와 함께...새엄마의 고향에 내려가본적 있었어  그냥 한번은 궁금해서 가보고 싶었어  새엄마가 나고자란 고향은 어떤곳인지  그러고보니...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나이에  무작정 상경하여 우리집 가정부가 되었다가  아빠와 결혼한  새엄마...  그 새엄마의 고향인 충청도의 한 마을    그러고보니  새엄마는 실은 밑으로 남동생이 둘 있었는데  이때는 이미 그 두 동생도 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어서 고향에는 없었다  사실 새엄마 밑에 동생이 있다는 이야긴  얼핏 듣긴 했는데  글쎄...새엄마한테 동생이라도 나한테  외삼촌이 되는건지...거기까진 나도 헷갈려서 잘 모르곘는데  다만 새엄마와 내 나이차이가 겨우 다섯 살이니  새엄마한테 동생이면 사실상 내또래라  혹여 직접 만나본다 하더라도   공연히 어색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엄마가 다니던 국민 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교정을 함께 걸었어  새엄마는 나름 추억에 젖어 눈물짓기도 하고  나는 괜시리 기분이 묘해졌다  바로 불과 십수년전 이곳이  새엄마 발자취가 여기저기 서려있는 모교라는점이  공연히 내 가슴을 설레게 했지  한번  괜히한번 새엄마를 번쩍 안아올렸다  그리고 한바퀴 돌아보았다  괜히한번 그래보고 싶었어  새엄마가 다니던 학교 교정에서 말이지  마치 어느어느 드라마나 영화 한 장면처럼말야   새엄마와 함께...해수욕장으로 피서를 간적도 있다  여하튼 우리집은 그 시절 그런대로 먹고살만한  중산층 가정이니  자주는 아니더라도 그래도 평균 2-3년에 한번꼴로는  여름에 부산이나 이런 유명한 해수욕장으로  피서를 떠났는데  그러고보면 새엄마도 뭐...  그런곳까지 가서 피서를 하거나 수영을 해본 경험은  없어서인지  많이 수줍어하는 눈치더라  새엄마의 수영복을  내가 직접 사주었는데  새엄마는 괜시리 수줍어서 얼굴붉혔지   부산앞바다 해수욕장에서  수영복 차림으로 서있는 새엄마의 모습  그러고보면 처음 서울에서 가정부로 꾀죄죄한 옷차림일때나  이후 아버지와 결혼 새엄마가 되었을 때  그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눈부신 태양아래 빛나는  수영복 차림의 새엄마의 몸매  나도 모르게  그런 새엄마를 안아보았다   시간이 좀 더 흘렀다.  80년대 초반을 지나...중반...  이 무렵이면 그러고보니  서울에 지하철이 놓여져...  대략 2,3,4호선까지 생겼을 무렵인데  한번은 새엄마와  인천까지 가는 전철을 탔다  괜히 한번 그래보고 싶었어  새엄마와 함께 무작정 전철이든 지하철이든 타보고  먼길을 떠나보고 싶었지   인천으로 가는 전철에  새엄마와 나란히 앉았을 때  문득 새엄마의 하얀양말에  다시금 눈길이 갔다  새엄마의 상징과도 같은  그 묘한 매력의 하얀양말  그렇다고...  사람많은 전철에서 뭘 할수있는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거기서 새엄마 양말을  만져보길 할수도 없고...입맞춤을 할수도 없는거니...  -.-;;;;    대신 말없이  새엄마의 손을 잡았다.  발대신 손을...  잡은거라고나 할까...  새엄마의 흰양말을  침 꿀꺽 삼켜가며 말없이 바라보며  새엄마는 피곤하고 지친 듯  나한테 기댄체  잠이들었지   지금와 생각해보면 그 시절이  참으로 길고도 오묘한  한바탕 긴 꿈을 꾸었던것만 같은  느낌이다  지금은 이미 긴 세월이 흐르고  아버지도 새어머니도 더 이상  내 곁에 없다  새엄마와 내가 겨우 다섯 살차이였으니  생각보다 좀 일찍 세상을 떠난셈인데  사실 어떤 의미에선  내겐 다행이다   만약 새엄마가 나이 60-70 넘을때까지  장수했다면  나 솔직히 그렇게 나이든 새어머니를  감당하고 받아들일수 있었을지  자신이 없다  오히려 그 시절  충청도에서 올라온 무작정 상경소녀  가정부 이모 출신의 젊은 새엄마  발을 씻겨주고 흰양말을 만지작거리며 살던 그 시절이  내겐 진짜 행복했던 시간이었던 것 같다   새엄마는 지금 고향땅에 묻혀있다  그 시절만 해도 아직 납골당에 안치하는게  보편화되기 전의 일이고  유골을 강이나 이런데 뿌리는것도  보편적으로 하던 그런 시절이었기 때문에  새엄마를 자신이 나고자란 고향동네  뒷산에 묻어드리는 것   그리 어려운일 아니었다   난 이따금 힘들고 어려울땐  혼자 술한병이랑 간단한 제수용품이라도 사들고  고향에 묻히신 새엄마 묘역에  찾아가곤 한다  귀엽고 인상적이었던 새엄마의 흰양말  그리고 그 시절을 그리워하며  그렇게 그 시간을 회고하다  돌아올 따름이지   솔직히...시간을 되돌릴수 있다면  차라리 그 시간으로 돌아가  새엄마 흰양말 만지작거리며  발씻겨주며 살던 그 시간으로  돌아가보고 싶다  이젠 다시 돌아올수 없는  내 사춘기...청년시절의 추억  내게는 아련하고도 영원히 잊고싶지 않은  그런 소중한 보물단지...유물단지처럼 남아있는  그 시절의 추억   실은 그 시절  잠들어있던 새엄마의 흰양말을  몰래 사진으로 찍은게 십여장 있다  새엄마에게도 평생동안 말하지 않은  따라서 모르고 떠나버린 일급 비밀이기도 한데  나는 그리워질때면 그때 몰래 찍은  새엄마 흰양말 사진을 꺼내  OO를 하곤 한다  그 시절에 차마 직접 못했던 것을  새엄마가 떠난지 어느덧 30년 세월이 지난 지금  그리움과 그리고 못이룬 욕구충족의 대한으로  하는것이라고나 할까   어쨌든 난 이제 그 시절이 그립다  이제 다시 돌아올수 없는 그 시절  OO동 OO 아파트에서  가정부 이모 출신의 다섯 살차이나는 새엄마  흰양말을 만지작거리며 살던 그 시절  다시 돌아올수 있다면 처음부터 그 시간을  아니 솔직히...요즘 그 어떤 1분짜리 타임슬립 영화처럼  한 씬이 끝나면 처음 그 장면으로 돌아가고  다시 한씬이 끝나면 처음 그 장면으로 돌아가듯  새엄마와 함께 한 시간이 끝나고나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가정부 이모로 들어오는  젊은 새엄마와 처음 만나는 장면으로 되돌아가는  마치 비디오테이프를 다 본뒤 처음부터 다시 돌려보는듯한  드라마 재방송을 보고 또보고 반복해서 보는듯한  그런 다람쥐 쳇바퀴도는듯한  그런 평행우주 인생을 살수는 없는걸까  새엄마와 다시 만날수가 없다면  차라리...그 그립고 행복했던 시절  묘한 만족감으로 충족되었든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갈수는 없을까  설사 그것이  1분짜리 타임슬립 영화마냥  시간의 쳇바퀴안에 갇히는 그런일이 될 지언정  젊은 새엄마와 함께하는 그 시간이  영원토록 반복되는 평행우주속에서  살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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