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순 불고기의 전설

공지사항 25.11.10

 좀 시시하고 진부한 이야기가 될지 모르겠는데  아내와 저의 결혼이야기를  한번 해볼까 합니다  아내와 저는  90년대 후반 있던 하이텔 기독교 동아리를 통해  만났습니다   하이텔 동호회이긴 하지만 기독교 동아리의 특성상  대체로 신앙심 깊은 사람들이 주로 참석하고  진지하면서도 화기애애한 속에  모임이 진행되는 경우가 많았었는데  아내의 첫 인상은  그 시잘 대략 나이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정도의  크리스찬 자매의 전형적인 느낌이랄까  말수는 적고 신앙심이 무척이나 깊어보이는   딱 그런 분위기의 자매였습니다   솔직히 전 그 당시 신앙연륜이  그리 깊지는 못했기에  이런 여인과 제가 사귀게 되리라곤  별 생각을 못했습니다  그저...이런 온라인 동호회의 오프라인 모임에서  그냥 가끔 몇 번 만나서 인사정도나 주고받는 사이  그 이상의 진전은  생각하지 못했던것이죠   하지만 어떤 하늘의 도우심이랄까  또는 신의 인도하심이라도 있었던것인지  우연히 저와 아내가 집으로 가는 방향이  같았습니다  그러니까 90년대 후반이면 어느덧  지하철 5호선,7호선이 다 놓인 시기이기도 한데  일단 저는 서울 강서지역의 모임장소에서  5호선 전철을 타고 중간에 3호선으로 갈아타  서울 강남에 있는 제 집으로 귀가하게 되었고  어내는 5호선을 타고 그 중간 어느지점이  그녀의 주거지라서  저보다 먼저 5호선에서 내리는 그렇게 헤어지게 되는  그런식으로 인연이 시작된것입니다   사실 하이텔 동호회 정기모임은  보통은 한달에 한번씩이지만 사정이 있으면  한 두어달에 한번씩 모임을 가질떄도 있고  또 회원 당사자가 다른 사정이 있거나 내키지 않으면  안 나올수도 있는거기 때문에  평균 한두달에 한번씩 만나는 모임을 1년내내 갖는다해도  그런 정모에서 만나는 아내를 1년에 만나는 횟수는  사실 총 6-7차례가 넘지 않을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니 비록 지하철을 같이 타고 귀가하는 정도가 아니라  그보다 더 가까운 거리나 인연이 있다고 해도  아내와의 만남이 좀 더 친밀하고 오래 지속될것이란 생각은  처음엔 그리 하지 않았습니다  근본적으로 아내는 저보다 다섯 살 연상인 누나였고  무엇보다 신앙심이 워낙 독실한 그녀를  아직 신앙연륜이 짧은 제가  범접하긴 쉽지 않을거라 생각했었죠  오히려 제겐 차라리 그녀를  처음엔...누나처럼 의지하고 싶다는  그런 마음 정도만 갖고 있었어요   사실 제겐...트라우마라고나 할까요  트라우마까진 아니더라도 콤플렉스랄까  사실 제가 집에서 외동아들이고  어릴때는 아버지가 해외에 장기출장을 가 계셔서  그럴땐 제게 친척 아주머니들이 교대로 집에들러  마치 파출부나 가정부 비슷한 역할로  제게 밥을 해주시거나 빨래나 청소를 대신 해주며  그런 절 돌봐주시긴 했지만  대체로 집에서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았고  공교롭게도 이웃집에   우연...치고는 뭔가 공교로운 인연이랄까   우선 옆집에는 저보다 한 두 살많은 형이 한명 살고 있었고  그 형에게 위로 누나가 둘이 있는 2녀1남중 막내였어요  그리고 1층에는 반대로 저보다 두어살 아래인 꼬마애가 하나  살고 있었는데  그런데 그 애에게도 위로 누나가 하나 있었고  그 꼬마애 누나가 저랑 동갑이었죠  여하튼 그래서 집에서 학교 오가는 등하교길에는  거의 뭐 매일 보는 사이기도 했고  게다가...뭐랄까...  하필 우연치고 공교롭게도  옆집형은 누나가 둘인 막내  1층 꼬마애는 위로 누나가 하나  게다가 또 하필 공교로운 인연이 하나 더 있어  제가 초등학교 5학년인가 6학년 무렵에  반애 중증장애를 앓는 아이가 하나 잇었는데  그 아이에겐 중학생 누나가 하나 있고  장애가 있는 동생을 매일같이 자기가 직접  학교에 데랴다주고 집에 데리고가고  살뜰히 챙기는 모습  참 보기 좋아보이다   하필 그렇게 우연치고는 공교롭게도  이웃집에는 누나가 있는 막내인 남자애가  둘이나 살고  또 반에도...장애인 동생 살뜰히 챙기는  그런 누나에게 보살핌을 받는 아이가 하나 있어서  그낭 막연히  ‘나도 누나가 하나 있었으면...’ 하는 그런 바램이랄까  그런게 좀 있었어요  그래서...나중에 성인이 되어 20대 후반 나이에  하이텔 신앙동호회를 통해 알게된 다섯 살 연상의 누나  그리고 우연히 집으로 가는길도 같은 방향이라  이 누나에게 동생처럼 의지하고 싶다  그런 마음 정도가 생기는  대충 그럴때였습니다   모임때가 아닌데   뜻밖에도 그녀가 전화를 한 것이  대략 주말이 거의 되어가는  목요일인가 금요일 퇴근시간이었습니다  사실 여자가 남자한테 먼저 만나자고  프로포즈 내지는 데이트 신청하는거  동서고금 사례를 다 살펴보고  또 아무리 어셩들의 사회적 권익과 목소리가  커진 그런 시절이라고 해도  여자가 먼저 남자한테 데이트 신청하고  적극적으로 나오는 모습은  그렇게 잘 없는 것 같던데...  뭐 하지만 세상에는 예외도 항상  존재하는 법이니까요  게다가 아직 전 그 당시  저보다 다섯 살 많은 30대 초반의  독실한 크리스찬 신앙인인 직장여성이기도 한 그녀를  그저 좀 누나처럼 의지해보고 싶은 마음  그런식으로 만난것이고  그래서 누나 입장에서도 별다른 부담감없이  저를 만나보고 싶다고  먼저 전화한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도 드는데  헌데 생각해보니까 제가 이미 ‘누나’라고 호칭을 쓰고 있는데도  그녀는 제게 반말을 잘 하지 않거나  동생처럼 대하지 않고 그저 제 이름으로   ‘OO 형제님’ 또는 ‘OO씨’...  이런식으로 부르는게  좀 마음에 걸리더군에  제가 뭐 부담스럽게 하거나 편치않게 대한거라도 있나  그런 생각에 좀 미안해지기도 하고요   만나서 가끔 차도 마시거 영화도 한편보고  그런식으로의 만남이 몇 번 이어졌을때쯤  누나가 제게 대뜸 이렇게 묻더군요  ‘나 아무래도 결혼관을 좀 낮춰야할 것 같나봐요  지금까진 그래도 가급적  신앙심 깊은 그런 형제를 만나고 싶었는데  생각해보니 세상에 그런 형제는  많지 않은 것 같더라구’   사실 신앙심 깊은 크리스찬 자매라면  어느정도 나이가 차면 한두번쯤 해볼법한 고민이긴한데  그런대 30대 초반에 – 내가 남자보는 눈이 너무 높았나  내가 조정(?)이 필요한건가... -   이런고민을 시작했다면...생각보다 각성이 좀  빠른편이긴 했습니다  사실 그런 생각 가지고있는 크리스찬 자매의 경우  나이 40-50이 되어도 각성하는 경우  쉽지 않더군요  게다가 만약 그 정도 나이까지 되었는데도  여전히 자신이 초혼이라 생각하고  재취자리는 한사코 거부하는 여성이라면  솔직히...그런 경우는 진짜 답 없는겁니다   그래도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니면 제게 좋은 사람을 만나게 해주려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여하튼 그 누나의 각성과 고민  그리고는 오히려 제게도  마치 충고하며 걱정되는 듯 격려하듯  이렇게 말하더라구요  ‘OO형제님도 가급적 결혼관에 대해  눈을 좀 낮춰봐요. 그렇지 않으면 진짜 좋은 자매를  오히려 못 만날수도 있어요’   사실 기억에 제가 그런말을 그것도 굳이  누나한테 한적은 없었던 것 같았는데  아마 누나의 지레짐작인지  아니면...아마 제가 ‘아직은 결혼이나 연애에 관심없다’  그런식으로 이야기한 기억은 몇 번 있긴 한것같은데  저의 그런 말을 누나가 그런식으로 받아들인것인지  실은 제가 20대 후반으로 접어든 그 무렵까지  딱히 그런 결혼이나 연애에 대한  큰 관심을 갖지 않으려는 것은  단지 그런 기왕이면 독실하고 같이 함께 신앙생활하며  결혼생활 이어나가고 싶은 그런 상대를 만나야겠다는  그런 생각보다는  솔직히 저희집안 내력에 대한  나름의 콤플렉스랄까...자격지심때문이었습니다   그러고보니 대뜸 누나가 제게 말하더라구요  ‘어머니는...돌아가셨다고 하지 않았느냐 ?’고  전 순간 당황했습니다  솔직히 전 하이텔 동아리뿐만 아니라 직장생활이나  일반 사회생활에서도  딱히 그렇게 깊은 친분이 있거나  아주 깊이 마음을 나누고 사귀는 그런 정도가 아닌 다음엔  저희집안 가정사에 대해 말한적은 거의 없거든요  기독교 동아리든 뭐가 되었든  하이텔 동호회 사람들에게도 그런말  한적은 없는 것 같은데...  다만 아마...부득이하게 누가 ‘부모님은 무엇을 하시냐 ?  또는 어디사시냐 ?’ 이렇게 물어보면  아마 적당히 얼버무리듯  ‘아버지는 대기업에 다니시고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이런식으로 얼버무리던적이 몇 번 있었던 것 같은데  아마 그런식으로 제가 어디선가 했던 이야기를   얼핏 귀동냥으로 전해들은바가 있긴 한건지   그래서 이런식으로의 만남이 지속되는 상황에선  그냥 솔직하게 말해줘야겠다는 생각에  자백을 했습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고  무슨말인지 의아해하는 누나의 눈빛을 바라보며  모든 것을 털어놓았습니다  사실 부모님이 오래전에 이혼하셔서  실은 유치원떄부터 부모님하고만 살았고  저 어릴 때 밥하고 청소하는 것 정도는  집안 친척 아주머니들이 돌아가며 도와주시곤 했다  그리고  아버지가 중간에 한 2-3년 해외로  장기출장을 나가신적이 있는데  그때 알게된 외국인 여성분과 재혼하셔서  외국인 새엄마가 생겼다...  그리고 외국인 새엄마는 제가 초등학교 5학년떄  20대 후반으로 저랑은 15살 차이다  모든 것을 사실대로 털어놓았죠   새엄마는 그렇다치고 외국인 새엄마라는 소리에  아마 그 시절만해도 그런 사례가 그리 흔치는  않아서였는지  누나는 제게 미안하다면서 진심으로  정중히 사과했습니다  사실 젊은 외국인 새엄마와의 사이는 딱히 그리  나쁘지는 않은 무난한 정도의 사이였기 때문에  그런걸로 미안해할것까진 없는데  다만 제가 결혼이나 연애를 구체적으로 망설인 것은  만약 정말 그런식으로 가다 여자와 진심으로 가까워져  결혼문제를 고민하게되면  언젠가는 저의 이런 집안내력을 다  솔직하게 말해줘야할 것 아닌가 하는  그런 문제에 대한 고민 때문에  전 그때까지 결혼생각이 없었던거죠   아내의 경우는   좀 뜻밖에도 위로 열 살차이나는 오빠가 두명 더 있는  그런 집안의 막내였고  - 뭐 첫째든 막내든 제가 그런걸로 편견있는  사람은 아닙니다만  그래도 평상시 아내를 볼 때 느낌은  제가 원래 누나처럼 의지하고싶어 만나기 시작한  상대라 그랬는지  아니면 아무리 그래도 저보다 다섯 살 많은  누나라서 그런지  그렇게 나이차이 많은 오빠가 있는  막내같은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기에  그래서 막상 아내의 가정환경을 알고나서는  좀 뜻밖이라는 느낌이 들긴 했습니다   그리고 장인어른...즉 아내의 아버님 되는분은  좀 뜻밖에도 젊은시절엔  야당 당직자로 활동하신분이라 하더라구요  그래서인지 연세드신 어른임에도 불구하고  성격이 다소 반정부적이고 무엇보다 군사정권에 대해선  여전히 비판적으로 말씀하시는  그런분이셨습니다  사실 90년대 후반이면 이미 정권교체가 된 이후의  일이긴 한데  장인어른 같은 경우엔 대통령이 누가되든 개의치않고  그냥 나라나 정치가 뭔가 잘못되어간다 생각하면  정권이 누구든 대통령이 누구든 가차없이 비판하는  일종의...요즘식으로 말하면 모두까기 경향이고  옛날식으로 말하면 반정부 내지는 반골기질이 있는  그런분이라고나 할까요 ?   그러고보면 아내에게 열 살차이 나는 오빠가  두명이나 있고  그런 사람들한테 아버지면 그때 이미 70을 넘은분  대략 1920년대생 정도라 할수 있는데  장인어른이 실제 야당 당직자로 활동하던 시기기  대략 6.25 직후 1950년대부터 60년대까지라니까  뭐 30-40대에 그런 활동을 하셨다면   딱히 그렇게까지 젊은 나이였다고 보긴  어렵다고도 할수있죠 뭐  하지만 막상 결혼을 하고 아이도 생기고하니  안정적인 직장이 필요해서 더 이상 정치활동은 안하고  그저그런 중소업체에서 한 20-30년정도 더 일하시다  지금은 퇴임하고 집에 계신 분이긴 한데   뭐 어쨌거나...나이 70 넘으신 어르신이  나이 40 다되어 본 막내딸이 그래도 이제야 결혼할 상대가 생겼다니  흔쾌히 반기는 그런 느낌이긴 했습니다  옛날어른들...흔히 그렇듯  늦게본 막내...나 눈감기전엔 혼사를 치러야하는데  그런 느낌으로 절 받아주신거죠  반대로 전 여전히 외국인 새엄마가 있다는 점 때문에  이걸 아내는 그렇다치더라도 처가식구들을  어찌 이해시켜야하나  그게 진짜 난감한 사안이기도 했습니다  처음 아내에게 그런 가정환경을 고백했을 때  아내는 무척이나 놀라고 뜻밖이란 반응을 보이면서  ‘많이 힘드셨겠네요’ 하고  제 손을 잡아주며 위로해주긴 했습니다  하지만 전 뭐 열다섯살 차이나는 외국인 새엄마하고는  그런대로 무난한 사이로 잘 지냈기 때문에  그런 문제까진 걱정안해도 된다며  되려 아내를 위로했습니다  게다가 어차피 90년대 후반 그 무렵에  직장생활 시작하면서 독립해 따로나와 살고있는  몸이기도 하고  결혼후에도 그렇게 부모님과는 따로 떨어져  살기로한거기 때문에  외국인 새엄마라서...그런 문제로 힘들거나  어색할일은 별로 없을거라고  아내는 물론 처가식구들도  그런식으로 납득시키긴 했습니다   사실 처음 아내 집에 인사드리러 갔을때는  그런 집안환경에 대해 사실대로 말씀드리니  장인어른,장모님 그리고 손윗처남들도  처음엔 많이 놀라도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납득을 하는 그런 분위기가  되어가더군요  뭐...아내도 행여 자기 식구들이 충격받을까봐  사전에 미리 귀띰을 해주긴 했는데...  글쎄요...90년대 후반에 나이 어느덧  30대 초반으로 접어드는   노처녀 막내딸이  다섯 살 연하에 그것도 외국인 새엄마까지 있는 남자와  결혼한다고 할 때  그 식구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고 어떤 느낌을 받았을지  솔직히 저도 그때는  상상하기 쉽지가 않더군요   결혼은 특별히 양가 부모의 큰 반대없이  무난히 허락받고 진행이 되었습니다  제가 외국인 새엄마에게서 자란몸이란게  아무래도 처가 식구들에겐 좀 충격이긴 했겠지만  아내가 식구들을 잘 설득한것인지  아니면 그땐 아내도 제게 푹 빠져있을때라  이런거저런거 안 따지고 결혼을 밀어붙여서  그리된것인지는 모르겠지만  - 근데 앞서 말씀드렸듯이 제 아내는 독실한  크리스찬인 직장여성이고  저를 만났을 무렵에서나 ‘결혼관을 낮추고 싶다’고  말할정도로...그전까진 가급적...독실한 신앙생활을  함께 영위해나갈수 있는 그런 배우자를 찾던 사람이기 때문에  앞뒤 재보지도 않고 그냥 무작정 결혼을 밀어붙얼  그럴 성격의 여자는 분명 아니었습니다  여하튼 저로선 그렇게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미 피차 서로간의 마음이 통하고 공감대가 형성되었을 때  결혼식준비가 무난하게 진행이 되었던것이죠   아내의 직업을 천상 언급해야겠네요  앞서 이미 말씀드렸지만  제 아내는 그 시절 흔한 분위기의 직장여성이고  사실 그래도 그 시절에 나이 서른 좀 넘었을정도의  직장여성이면 그래도 팀장정도는 되는 간부급 아닐까  그 정도 짐작은 하고 있었는데  일단 아내는 흔한 대기업 여사원이나  은행원이나 공무원 그런 것은 아니었고  뜻밖에도 연예계에 종사를 하던 그런 사람이더군요  그렇다고 직접 무슨 연예인들 만나서 이런저런  허드렛일 도와주고 – 가령 매니저나 코디네이터같은  그런건 아니고...그 시절 그런대로 잘 나가는  중규모 연예기획사 사무처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 근데 대한민국 방송,연예사를  그렇게 줄줄 꿰차고 있는 사람 알고보면 그리 많지않지만  90년대가 사실상 우리나라 연예기획사의 태동기였기 때문에  그렇게 규모있고 큰 기획사가 많지는 않던 시절이었습니다  - 대충보면 이전에는 가수들 관리하고 음반내주는 기획사들  그런게 조금씩 성장하면서 연예기획사 개념으로 자리잡아간듯하고  매니저의 경우 원래 밤무대 출연하는 가수,연예인들  스케줄 관리해주던 사람들이 차츰 매니저 개념으로  자리잡아갔다는 이야기도 있으니까  게다가 탤런트나 개그맨 같은 것은 90년대 중반까지도  방송사 공채시스템 위주로 관리되던 시절이니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아직 우리나라에  연예기획사란게 지금처럼 많지도 않고  사실 일반인들에게도 그리 잘 알려져있지 않던  그런 시절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아내도 저를 만나 처음 한동안은   ‘그냥 중소업체에서 일한다’고만 막연히 이야기하지  구체적으로 어떤 직장에 다니는지는 언급을 하지 않았고  기억에 그렇고보니 하이텔 기독교 동호회 정모에서도  자기소개를 그냥  ‘중소업체에서 일하는 여직원’ 그 정도로만 막연히  설명했던 듯 합니다   뭐 어쨋거나  그러고보면 저도 대학졸업하고 군대 갔다와서  그저그런 중소기업에 말단직원으로 취직  일하기시작한지 얼마 안되던 시절이고  중규모든 그보다 좀 큰 기획사든지간에  연예기획사ㅔ서 일한다는 아내  일단 전 아내가 결혼후에도 일을 계속 하고싶다는 의사는  흔쾌히 받아들였습니다  그래도 어느덧 90년대 후반이면  그 정도의 중규모 업체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이면  그래도 기왕이면 맞벌이가 더 좋고 돈을 수월하게  벌어모을수 있다는 생각에  아내가 결혼후 직장생활 하는 것을 흔쾌히 찬성  이 부분 별다른 갈등없이 그렇게 진행이 된것입니다   결혼후 가정은...  그때까지 제가 살던 강남의 집을 팔고  상대적으로 가격이 싼 강서지역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참고로 저희 아버지는 30년 넘게 대기업에서 근속하셨지만  이 무렵엔 정년퇴임하셨을때고  그때부턴 경기도의 신도시로 이주하셔서  외국인 새어머니와 함께 두분만의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하셨고  전 그때까지만 해도 직장생활 떄문에 서울살이가 더 수월해서  강남의 집에서 쭉 계속 살다가  결혼을 하게되어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할 무렵에  집을 팔고 아내와 함께 살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한것이죠   결혼생활은 대체로 무난하게 잘 흘러갔습니다  연예기획사에서 사무직으로 일하는 아내는  결혼후에도 직장생활을 계속했고  저 역시 중소기업 말단직원으로서의 직장생활은  계속해나갔으니까요  다만 아쉽게도  일단 1920년대생인 장인어른은 그때 이미 연로하신 나이고  또 저희 아버님도 – 장인어른보다야 그래도 한 십여살  젊은분이긴 합니다만   막상 정년퇴임하고 나셔서는 심정으로 많이 지치셨는지  역시 제가 결혼하고 한 10년쯤 지났을 무렵에  시름시름 앓다 세상을 떠나시더군요   굳이 시기적으로 구체적으로 언급하자면   제가 pc통신 동호회를 통해 아내를 처음 만난게  대략 97-98년경의 일이고  그리고 한 1년여의 교제기간...한 1년여의 결혼준비기간  결혼식을 그러고보니 새천년을 반년도 채 남겨놓지 않은  99년 여름에 올렸었네요  그리고 장인어른이 돌아가신게 저희가 결혼후  5년정도가 지난 2천년대 중반의 일  아버지가 돌아가신게 장인어른 돌아가시고  5년이 더 지난뒤의 일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장인어른은 젊을 때 – 정확히 30-40대 시절에 -   야당 당직자로 활동하셨던분이고  그래서 대체로 과거 군사정권에 대해선  비판적인 분이었던데다가   막상 정권이 바뀌고나서도  일종의 모두까기 모드인지...아니면 소위 말하는  그냥 반정부 내지는 반골기질인건지  그 당시 대통령이나 정치권 전반에 대한 비판도  서슴치 않는 그런분이셨습니다  뭐...그렇다고 정치 이야기를 그렇게  자주하는 분은 아니셨습니다만  비록 전력이 그렇더라도 오히려 상대방에 대한 배려심이  어느정도 있으신분이라  저는 그렇다치더라도 특히 저희 아버님과   혹 가끔 만나 이야기 나누실때는  정치이야긴 가급적 않는 그런분이셨습니다    다만 그러던분이 2천년대 중반쯤엔  그러니까 돌아가시기 한두달쯤전에  제 손을 잡으며 한번은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구요  ‘저러다 진짜 O갱이 세상된다...조심해야한다... ’  30-40대 시절 야당활동을 하셨기 때문에  군사정권에 비판적인분  게다가 이후에도 대체로 반정부내지는 반골기질이  다분하셨던 장인어른이  막상 2쳔년대 중반 그 시점에 제 손을 부여잡고  간곡히 말씀하시던건  뭔가 좀 의미심장하게  느껴지더이다   - 생각해보니 한편으론 우스운게  앞서 말씀드렸지만 장인어른이 야당 당직자로 활동한건  정확히는 50년대 중반부터 60년대 중반까지  그리고 70년대부터는 대체로 평범한 직장생활을 하셨다니까  가령 솔직히 O두환 시절에는 장인어른이 정치권 활동을  하는분도 아니었고  박OO 시절 혹 야당하면서 탄압받고 핍받받던 시간이래봤자  초창기 5년도 채 안되는 짧은 시간이었을텐데  그런 장인어른이 굳이 군사정권에 대해선 안좋게 생각하시는건  지금 생각해도 뭔가 여러 가지로  기분이 묘해지게 만드는 일이긴 했습니다   아버님이야 뭐 대기업에서 쭉 직장생활 하시다  90년대 후반 정년되임하시고 이후 한 10년은  그래도 집에서 혼자 지내시긴 무료하셨는지  가끔 사회봉사활동이라도 하시다  그렇게 10년을 더 살다가셨으니  정치권이나 그런 문제하곤 별로 관련이 없는분이고  다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나셔서  저희집에도 작은 변동이 생겼습니다   다름아닌 외국인이기도 한 저희 새어머니  막상 아버지가 돌아가시고나니  자신이 살던 미국으로 돌아가시고 싶다는  의향을 밝햐시더라구요  생각해보니 미국인이기도 한 새어머니  물론 아버지와 결혼후 한국에서 사신지 그러고보니  어느덧 25년 이상이 되는 그런분이긴 합니다만  그래도 한국생활 막상 그리 정이 붙지는 않았던것인지  저야 결혼해서 따로 살고있고  아버지마저 돌아가시고나니  더 이상 한국땅에서 살 이유는 없다고 생각하셨는지  미국으로 돌아가시겠다는 의사를 밝히시더라구요   어머니 말씀으로는 미국에 어릴 때 어울리던 친구들  그리고 대충 어울리는 사촌뻘쯤 되는 친척동생들이  있다고 하셨는데...  사실 어머니가 한국땅애서 25년 살면서  전혀 한국인이나 이웃주민들과 교류가  없었던분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하지만 막상 저도 결혼해서 따로 사는 상황에서  아버지까지 돌아가시고나니  많이 쓸쓸하고 외롭고 힘들어서 그러신지  미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말씀을 하시더라구요  그러고보니 새어머니 연세도 어느덧  50을 넘긴 분이었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5학년때 20대 후반이었던 새어머니  그러고보니 제가 결혼할 무렵인 20대 후반때는  40대 초반이셨던 새어머니도  어느덧 그 정도 연셰가 되어 계셨던겁니다   저야 뭐...미국으로 떠나시겠다는 새어머니에 대해  굳이 반대할 이유는 없는 사람이있지만  다만 그래도 막상 떠나신다는 날이 다가오니  많이 서운해지더라구요  가슴한켠이...아려온다고나할까...  가슴이...저려온다고나 할ᄁᆞ  뭐랄까...한두마디 표현으로는 말하기 힘든  어떤 슬픔이랄까...아픔이랄까  그런게 한꺼번에 몰려들었습니다  새어머니가 인천공항을 통해 떠나시는날  말없이 한번 새어머니를 안아보았습니다  그리고 보내드렸습니다   결혼생활의 위기는  뜻밖에도 그보다 훨씬 시간이 지난뒤에  찾아왔습니다.    그것도 결혼한지 이미 20년이 다 되어가고  제 나이도 어느덧 30대와 40대를 거쳐  50을 향해가고 있을 무렵에 말이죠  그보다 앞서 좀 더 말씀을 드리자면  무슨 문제가 있는것인지...아내와 저는  두 사람 사이에 아이가 없었습니다  그것도 결혼한지 20년이 다 되어가도록 말이죠  혹시 성적으로 무슨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  그런식으로 오해하실분들도 계실 것 같아서  그래서 말씀드리자면   결론적으로 말하면 전 정상이고요  딱히 신앙적으로 망설여진다거나 뭐 그런것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결혼전부타...누구보다 신앙심이 독실했고  그렇게 함께 신앙의 눈높이가 맞는 남자를 만나  그렇게 결혼생활과 신앙생활을 함께해보고 싶노라  말하던 아내   그래서인지...  확실히 혼전 경험은 없더군요  하지만 전 솔직히 한때  좀 밝히던 면도 있었기 때문에  첫날밤부터...아무런 이해(?)가 없는채  저돌적으로 아내에게 달려갔습니다  저보다 다섯 살 많아 그때 이미 서른이 넘었고  나름 반듯한 직장생활까지 하는 그런 아내  하지만 막상 그 문제에서만큼은  무섭고 두려워하고 있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솔직히...  그전까지의 일상에선 항상  저로선 대하기 힘든 다섯 살 연상의  신앙심 깊고 엄격한 누나...  그래서 늘 대하기 힘든면까지 있던 아내가  귀엽고 깜찍해 보였던게  딱 그때였습니다  그때까지도 아무런 경험이 없던 아내는  그저...두렵고 무섭고 아파서  울고 있더군요  그런 아내를 달래주고 토닥이며...  진짜...너무 귀엽고 순수해 깨물어주고 싶다는  충동까지 느끼며  아내를 안아주었습니다  아내가 때론 너무 아프고 힘들어하는 것 같아  살살...달래 수위조절을 하면서까지 ^^;;  아내와의 신혼때 잠자리 분위기가  대충 그럤다는 이야기입니다    생각해보니 좀 쓸데없는 이야기를  너무 길게 주절거린 것 같네요  일상의 이야기로 돌아가죠  저흰 결혼후 20년이 다 되어가도록  아이가 없었지만  아내의 열 살차이 나는 오빠 두명은  당연히 저와 나애가 결혼할 때  이미 기혼상태고 초등학교 저학년 내지는  미취학 아동의 자녀까지 한두명 있는  그런 상태였습니다  정확히는 큰처남네는 아들하나,딸 하나가 있었고  작은처남네는 딸 둘과 아들하나가 있었습니다  저와 아내 사이엔 자녀가 없었지만  대신 명절 때나 처남네와 교류가 있을떄  만나보는 그집 아이들  대산 보는 재미로 살았다고나 할까요 ?  하지만 그것도 어느덧 십수년 세월   처읍 보았을 때 초등학교 저학년 내지  미취학아동 상태였던 처조카들도  어느덧 중,고생 나이를 거쳐  20대 초,중반 성인으로  자라있을때였습니다  뭐 그때까진 여하튼 아이없는 서운함은  조카들 봐주는 재미로 달래곤 했다는 이야긴데   하지만...이제 진짜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제가...중소기업에 다녔다는 이야기는 이미 했었죠 ?  확실히 큰 회사는 아니고 그래도 아주 작다고는 할 수 없는  최소한 ‘군소업체’라 표현하긴 좀 억울한  그 정도 규모의 회사  한 20년 다니면서  그래도 말단사원에서 주임이나 팀장급은 되는  그런 간부도 여러번 맡아보며 살았는데  하필 그 무렵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그러고보면...  90년대 후반 그 IMF시절도 잘 넘기고 버틴 회사인데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시점에선 또다른 어떤 한계를 만났는지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회사는...부도를 내는대신 정리해고를 택한 듯  나이 40대 후반에 간부급이던 저는  먼저 해고되었습니다   직장에서 해고되고 거리로 나오는데  진짜 눈앞이 캄캄해지더군요  이제와 하는 이야기지만  전 저 자신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압니다  - 따지고보면 그건 누구나 다 마찬가지곘지만  무슨말이냐면 저 자신의 능력과 한계를  어느정도 알고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솔직히 그래서 20대때는  막연히 그런 생각도 했습니다  20대 중,후반부터 한 30-40대 50 좀 넘을때까지  대략 25년 좀 넘게는 열심히 돈벌고  그리고 나이 50넘어서 슬슬 후배나 다음세대한테  밀려나는 느낌이 들 때  그때 물러나서 그때까지 모은돈으로  조용히 여생을 부내자는...   뭐 문화예술계 같은데 보면 나이 70-80될때까지  노익장을 과시하는분들도 계시고  사업하시는 분들 가운데도 그런분들이  더러는 없지않아 계신가 합니다만  전 적어도 그렇게 능력자는 아니고  한 나이 50넘어서 내 능력이 한계에 도달하고ㅛ  차츰 후배들에게 밀려나는 느낌이 들면  그때쯤 물러나자...그 생각을 했던것입니다  사실 제가 젊은시절  결혼을 망설인...아니 더 정확히는  결혼이나 연애문제를 제 관심권 밖으로 밀어둔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런면도  이유중 하나였습니다  그 하나가 제 가정사에 대한 자격지심 내지 콤플렉스  그리고 또 하나가...  과연 내가 정상적으로 한 가정을 일구고 온전하게  한 가정을 끝까지 책임지고 나갈 능력이 될련지  그 부분에 대한 자신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젊은시절엔  - 아내는 그걸 혹시 신앙의 눈높이가 너무 높아서  (마치 자신처럼 ^^;;;;) 결혼을 못하는거 아니냐구  그런 오해를 하기도 했지만  전 젊은시절 결혼을 망설인 이유가  그런면이 오히려 더 컸던것입니다  그래도 다행히 이렇게 신의 도우심인지  인연이 되는 사람을 만나 20년 살아왔지만  막상 회사에서 짤리고나니  이제 모두 끝났구나...마지막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이다   술에취해 밤늦게 들어와서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이제그만 떠나달라고...당신을 놓아주겠으니  만약 정히 견디기 힘들 것 같다면  떠나달라며  그야말로 솔직한 심정 그대로  아내에게 토로하였습니다   아내는 뜻밖에도  그런 제 손을 잡아주면서  그리고...  그야말로 오랜만에 마치  막내동생이라도 위로하는 큰누나처럼  혹은 시험 망친 초등학생 제자라도 위로해주는  선생님처럼  절 안아주며  위로해주더이다  기운내라며  ‘저는 당신곁을 떠나지 않는다고...  그렇게 나오는 아내에 대한 미안함이 한층 더 증폭되어서라도  저는 더 이상 무슨 말을 잊지 못했습니다   여하튼 실직을 당해 한동안 갈곳이 없어진 저  실의에 빠진 상태로 한동안 집안에만 틀어박혀있는 제게  다가와서 뜻밖에 이런 제안을 하더군요  같이 식당이라도 한번 해보는거 어떻겠느냐고...  저는 순간 머릿속이  많이 혼란스러워졌습니다  식당일이 하기싫거나 자존심이 상하거나 그래서가 아닙니다  사실 어느어느 드라마나 영화의 결말  혹은 인생다큐 같은데서도  요즘은 그런 일화 흔하게 소개되더군요  - 대충 IMF 직후부터 소개되는 사례들이니까  그런 사례 방송에서 접해보는거 이제 더 이상  새삼스럽지도 않은일이 되었고요  뭐 가령 한떄 무슨 대기업이든 잘나가는 직장이든  그런곳에 다니다가 어떤 계기나 사정이 있어  그만두었든 실직을 당했든  그러다 자영업을 하든 귀농후 전원생활로 재기하든  그런 이야기  저도 뭐 방송에서 많이 봐서 알고는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드라마도 영화도 인생다큐도 아니잖아요  오히려...자영업 무턱대고 해보았다가 안되서 더 쫄딱 망한 이야기  - 심지어 그러고는 차라리 월급받으며 일하던 시절이 더 나았다며  징징대는 이야기  역시 마찬가지로 귀농이라도 해서 농사라도 지어볼까 했더니  (* 특히 요즘은 기상이변이다 뭐다 그런 문제때문에라도)  막상 해보니 장난아니더라며 귀농 때려치우고  서울로 돌아오는 이들이 더 많더라는 이야기  따지고보면 잘나가는 직장 때려치고 자영업에서 성공한다던가  귀농해서 전원생활로 낭만적으로 여생을 보내고 있다던가  그건 정말 극히 일부의 사례이고  실제 현실에선...그래서 성공한 경우보다 망한 경우가  더 많은걸로 알고있습니다  그래서...차라라 정당하게 매달 꼬박꼬박 월급받고  일하던 시절이 나았다고  전원생활은 개뿔...차라리 그냥 도시에서 직장생활 하던게  더 낫더라는 이야기들  저도 많이 알고는 있거든요  현실은 드라마도 영화도 인생다큐도 아니잖아요  그런 제게 아내는 같이 식당이라도 해보자고 거듭 권했지만  전...그러다 더 망해 그나마 있는돈도 다 날려버리면  그땐 어쩌나 하는 생각에서라도  차마 확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헌데 정작 아내는 구체적으로 무슨 구상이라도 있는지  ’같이 불고기집을 해보자‘고 제안하더군요  그리고는 실제 불고기 명가라던가 비법같은게 있는  그런 식당이나 명장 이런데를 찾아다니며  나름 어떤 비법 같은 것을 전수받아보려는 시도중이었습니다  이쯤되면...절 지켜주겠다는 아내가 미안해서라도  이 제안...식당이라도 같이 열어보자는 것   거절은 못하겠더군요   헌데 이때 설상가상의 사태가 또 터졌습니다  실은 아버지가 돌아가신뒤 미국으로 떠난  (외국인) 새어머니가 돌아오신겁니다  막상 그렇게 저도 결혼해 나가 따로살고있고  아버지도 돌아가시고 나니 여기서 더 살 이유가 없다 생각하셨는지  미국으로 떠나신 새어머니가  정작 그렇게 한 10년을 잊고 살고 있었는데  하필 이럴 때 다시 저희곁으로 돌아오신겁니다  대충 이야길 들어보니까 막상 그렇게 한 대략 25년만에 돌아간  자신의 고향 미국  25년만에 돌아가 적응해보려니 잘 안맞더라구  그래서 한국으로 들어오신거라네요  저흰 혼란스럽고 당혹스러워서  뭘 어찌해야할지 몰라 한동안 더 난감했습니다  그간의 정리때문에라도 야박하게 쫏아낼수도 없고  하필 이런 상황에서 새어머니까지 세식구가 함께사는  모양새가 된거죠  - 그러고보면 저랑 열다섯살차이 나는 새어머니도  어느덧 환갑넘은 할머니신데...   결국 이래저래 더 이상 놀고있을수만은 없어서  아내의 제안대로  식당을 열어보기로 했습니다  아내가 나름 한 1-2년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알아낸 불고기 맛집 기술을 전수받아  거기서 응용한 새로운 불고기를 개발  팔기 시작한거죠  일단 불고기집은 아내의 이름을 응용   ’백순 불고기‘라고 짓고 영업을 시작한겁니다  어차피 이렇게된 것  제게 이렇게 신경써준 아내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 때문에라도  전 식당경영에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 1-2년 고생하며 일을 해보니까  그런대로...아내가 전수받아 개발한 기술이 괜찮았는지  불고기집은 금방 명물로 소문이 나  장사가 잘 되더이다.   그렇게...  ’백순불고기집‘ 전설의 탄생이라고나 할까요  여하튼 30년전 하이텔 동호회 인연으로 만나 결혼한 아내와  처음 한 20년은 직장생활 하면서 그렇게 결혼생활 영위해나가며 살다  나이 50이 다 되어 맞은 실직사태  이후 아내와 함께 연 ’백순불고기집‘  비록 저와 아내 20년 넘게 함께 살면서  아이는 없었지만  이쯤되면 그렇게 뜻맞는 아내와 행복하게  여생을 보낼수도 있곘다는 자신감이 생기더군요   아, 참 이 무렵  뜻밖의 선물이 하나 생겼습니다  뭐...나이 50에 뒤늦게 아이라도 생긴건 아니고요  제가 이미 나이 40대 후반이니 저보다 다섯 살 많은 아내의 임신은  더더욱 불가능한 일이니까요  실은 한국으로 들어오신 새어머니께서  저희 부부 이렇게 아이없이 사는게 좀 딱해보였는지  입양을 해보는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하시더이다  뭐...요즘은 우리사회도 입양에 대한 편견은  많이 없어진지 오래고  미국이야 뭐 오래전부터 입양이 활성화된 나라지만   대충 새어머니로부터 들은 사연은 이랬습니다  새어머니 사촌동생의 딸중에 오래전 부모를 잃고  이후엔 이런저런 친척집을 전전하기도 하고 친구집에서  얹혀살기도 하고 그렇게 사는 아이가  하나 있다고 하더라구요  나이가 지금 17-18세 정도 되었다고 하는데  그 아이...처지가 참 딱하고 마침 자네들도 아이가 없으니  한번 입양을 진지하게 검토해보는게 어떻겠느냐고  으음...  외국인 새엄마한테서 자란 제가  이번엔 또 미국아이를 입양해서 산다...  좀 고민이 되는 일이긴 했지만  아내와 상의를 해보니 아내가 뜻밖에도 마음을 열어  입양은 생각보다 수월하게  일사천리로 진행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제 나이 50에 뜻밖에 찾아온  뒤늦은 선물이라고나 할까요  그렇게 아내와 연 ’백순불고기집‘은  지금도 성황리에 잘 꾸려가고 있고  새어머니의 제안으로 입양한 아이도 잘 키우며  그렇게 뒤늦게 찾아온 행운이자 선물을  보석처럼 간직하고 가꾸며  그렇게 살아가고있는 것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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