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칠순에 전화 한 통 안드렸는데 제가 불효녀인가요

공지사항 25.11.29
일단, 아빠 생신이신 줄 몰랐습니다
알았으면 카톡 정도는 드렸을 거예요

근데 오늘 엄마와의 통화 말미에
9월이 아빠 칠순이었는데 어쩜 전화 한 통 안했냐고
아빠가 많이 서운해하셨다고 뭐라 하시는거예요

근데 저희 엄빠는 제 생일 파티는 커녕 케이크 한 번 사주신 적이 없거든요? 두살 터울 오빠는 항상 성대하게 해줬으면서 말입니다
오빠가 몸이 좀 약해서 친구들 많이 사귀고 잘 지내라고 그러신 걸 알기 때문에 유치부 꼬맹이 때부터 서운한 티도 못내고 컸어요 해달라고 조른 적도 없구요 그 어릴 때부터 포기와 체념을 배운거죠

40이 된 지금도 기억이 나는게,
5살 크리스마스 때 엄마가 제 손을 잡고 시장에 가더니
제 옷을 사주시겠다는 겁니다
맨날 오빠 옷이나 친척 옷만 물려 입다가 새 옷을 사주신다니 너무 행복했거든요?
근데 스웨터를 결제하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내일 산타가 어린이집에서 선물 나눠줄텐데, 그 때 전해줄 네 선물이야' 라고 하시는게 아니겠어요?
전 그 때까지만해도 산타의 존재를 철썩같이 믿고 있던 응애였기에 엄마 말이 이해가 안갔습니다
엄마가 집에 가서 스웨터를 포장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다음 날 산타가 제 손에 엄마가 제 눈 앞에서 고르고 쌌던 포장지 꾸러미를 전해준 후에도
포장을 풀면 마법처럼 다른 선물이 들어 있지 않을까 하며 실낱같은 희망을 품었지만..

하지만 오빠는 엄빠의 거짓말 속에서 중학생이 될 때까지도 산타를 믿을 수 있었지요 어무리 제가 산타는 없다고, 엄빠가 산 선물이라고 말해도 말이죠..

여튼 전 그렇게 생일, 기념일, 선물, 축하 같은 거에 대한 개념이 없이 컸기에
사회 생활을 하면서 필요한 처세는 당연히 하고 있지만
솔직히 누구의 생일이건 기념일이건 아무런 감흥이 없어요

근데 절 이렇게 키웠으면서 이제와서 서운하다고 하시니까 좀 어이가 없길래,
'이런 말하면 속상하실 거 알지만 내 생일 날 케이크나 선물 한 번 주신 적 있어요? 내 생일도 안챙기는데 엄빠 생일 솔직히 언젠지도 몰라' 라고 말했습니다
연월일이야 당연히 알고 있지만 생신 음력으로 세시는데 그걸 매 년 어떻게 기억하고 챙기겠어요
양력에 전화드렸더니 이미 지났다고 내년엔 음력 당일에 축하해달라고 하신 뒤로는 양력에도 전화 안드리게 되었거든요

어릴 때는 모든 정성과 물질을 오빠한테 몰빵해서 키우셨으면서 이제와서 저한테 살가운 자식 노릇 바라시니까 내가 왜? 싶어요

아, 참고로 오빠가 저한테 저지르는 가정폭력과 소시오패스 짓 다 알고 계시면서도 두 분 다 방관하셨어요
엄빠 자리 비우실 때마다 몇 시간을 두드려 패고 칼 휘두르면서 찔러 죽이겠다고까지 했는데도
그냥 다 감내해야 했어요 저 혼자
그 덕에 초등학생 때부터 결벽증같은 정신 이상 행동 했는데 그것도 방관하셨고.. 탈구가 되서 마당에서 울고 있는데 알아서 끼워 맞추라고 하고는 집에 들어가서 저 빼고 다 같이 저녁식사 하고..

급식 때도 용돈다운 용돈 받아 본 적 한 번도 없고 단벌 교복 이 외 옷 변변한 옷 한 벌, 학원이나 인강 없이 학교 수업과 독학으로 인서울 성공한 뒤로 알바 세개씩 뛰며 등록금에 생활비까지 제가 벌어서 졸업하고 다행히 바로 취업에 성공해서 오빠의 가정폭력을 피해 자취를 시작한 뒤로 엄빠와는 별 왕래 없이 일 년에 한 두번 뵙고 네 다섯번 연락 주고 받는 게 끝입니다

이런데도 칠순은 챙겼어야 했던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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